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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계목완문(啓目完文)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형조(刑曹) 찬(撰)
작성시기    :
1893 / 고종 30년
형태사항    :
크기: 38.8×28.0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31.2×21.2㎝ / 인장정보: 刑曹之印, 藏書閣印
청구기호    :
K2-3624
M/F번호    :
MF16-308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1893년(고종 30) 국왕의 幸行 시에 격쟁하였던 幼學 金魯臣 등의 청원을 받아들여 鄕校任員으로 擇用하라는 完文이다.
서지사항
본문 첫 장의 서명과 표지 서명이 ‘啓目完文’이다. 표지 장황은 민무늬 회색 종이를 사용하였고, 붉은색 실로 선장해놓았다. 본문은 괘선이 없는 백지에 6행 12~15자에 맞추어 행초서로 쓴 고문서이다. 지질은 두께가 두꺼운 壯紙를 사용하였다. 책 수는 6장 1책이다. 인장은 본문 첫 면에 ‘藏書閣印’을 날인하고, 펼친 양면에다가 3과씩 ‘刑曹之印’을 날인하였다.
체제 및 내용
이 문서의 작성 시기는 1893년이다. 啓目은 조선시대 중앙의 관청에서 국왕에게 올리던 문서의 양식을 말하며, 完文은 관청에서 향교·서원·사찰·마을·단체·개인 등에게 발급하던 문서이다.
문서의 구성은 ‘刑曹爲相考事’라고 시작하며 고종의 下敎 내용을 싣고 있다. 그 내용은 고종이 행행 시에 격쟁한 유학 김노신 등에 대한 처리 문제를 다루고 있다. 이들은 신라 敬順王의 후손으로서 제사 등을 지속하기 위해 조정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호소하였다. 문서에는 조선 太宗·成宗·孝宗 연간에 지원 내역이 정리되어 있다. 고종은 이들에게 향교임원 자리를 임명하며 청원을 들어주었다.
국왕이 행행을 하면서 백성들의 上言과 擊錚을 받는 것은 조선 후기 국왕이 백성들의 의견을 직접 듣고 처리해주는 특별한 정치 방식이었다. 행행은 국왕이 궁궐의 외부로 나가는 것으로 종묘의 제례와 私家에 방문하는 것에서부터 都城과 王土의 경계까지 그 범위와 사례가 다양하고 광범위하였다. 조선 후기에는 선왕의 능에 참배하기 위한 陵幸이 지속적으로 시행되었다. 이러한 능행은 단순한 참배의 의미를 넘어서 국왕이 행하는 중요한 정치적 의식이었다. 행행을 통해 내부적으로는 정치 세력을 단속하고, 외부적으로는 민심을 돌보는 계기로 삼았던 것이다. 특히 고종은 19세기 여러 국왕들 중에서도 행행에 적극적으로 나섰던 인물이다. 이 문서는 고종 연간 행행의 시행과 후속 조치들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특성 및 가치
 조선 후기 국왕의 幸行이 백성들의 상언격쟁에 어떻게 이용되었는지 알 수 있는 중요한 사례이다. 고종은 이전 왕들에 비해 행행이 잦았는데, 고종 연간 행행의 시행과 정치·사회사적 의미를 연구하는 데 활용할 수 있는 사료적 가치가 있다.
참고문헌
이왕무, 「조선 후기 국왕의 陵幸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학위논문, 2007.
집필자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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