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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강화유영계록(江華留營啓錄)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이왕직 실록편찬회(李王職 實錄編纂會) 초록(抄錄)
작성시기    :
사년미상(寫年未詳)
형태사항    :
크기: 26.9×19.6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불분권(不分卷) 5책(冊) / 판식: 반곽(半郭) 22.5×15.6㎝ / 인장정보: 李王家圖書之章
청구기호    :
K2-3623
M/F번호    :
MF35-812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1846년(헌종 12) 6월부터 1880년(고종 17) 12월까지 강화유수부에서 올린 狀啓와 국왕과 비변사의 지시 사항을 정리한 문서이다.
서지사항
표제와 서근제는 ‘江華留營啓錄’이다. 5책은 서근제는 없다. 표지 장황은 청색 종이에 육각형의 벌집 문양이 있는 것이며, 붉은색 실로 선장해놓았다. 표제는 흰색 題簽을 붙여 붓으로 적었고, 앞표지 우측에 ‘哲宗丙午至壬子’를 적었는데, 각 책마다 해당연도를 적어놓았다. 본문의 판식은 四周雙邊과 上內向靑魚尾이며, 판심 하단에 ‘李王職實錄編纂用紙’가 찍힌 200자 원고용지를 사용하였다. 지질은 뒷면이 비치는 얇은 洋紙이다. 본문의 글씨는 반듯한 楷書로 적어놓았다. 책 수는 不分卷 5책이다. 인장은 각 책마다 앞표지 이면에 ‘李王家圖書之章’을 날인하였다.
체제 및 내용
총 5책으로 각 책마다 책 수가 표기되어 있다. 표지에는 정리된 계록의 시기도 적었다. 계록은 지방관이 올린 장계와 비변사의 지시 사항을 모아놓은 책을 의미한다. 강화도서울에서 서해안을 출입하는 길목으로서 군사적·재정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외국의 군대가 바다를 통해 서울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강화도를 통해야 했으며, 하삼도에서 올라오는 세곡도 강화도를 경유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강화도를 보장처로 삼고 유수부를 설치하여 관리하였다. 강화도의 여러 창고에는 유사시를 대비하여 항시 대규모 군향을 비축하였고, 이를 보호하기 위해 산성을 쌓고 진보를 설치하는 등 군사시설을 강화하였다. 군대를 통솔하기 위해 1700년(숙종 26) 鎭撫營이 설치되었고, 강화유수鎭撫使를 겸임하였다. 이와 같은 중요성으로 인해 조정에서는 지속적으로 장계와 각종 문서를 통해 강화도의 현황을 점검하고 관리하였는데, 이 문서도 그중 하나이다.
본문의 형식은 보고하는 날의 연월일과 강화유수의 성명을 쓰고, 보고 내용을 적었다. 내용은 강화도의 세곡·환곡·창고·군사·외국 선박 등 다양한 주제들로 채워졌다. 강화유수부에서 운용하는 환곡에는 內需司·毓祥宮·明禮宮·龍洞宮·壽進宮·於義宮 등 주요 왕실기관이 포함되었기 때문에 더욱 중요하게 관리되었다. 따라서 이와 관련한 보고가 꾸준히 올라오는 것을 볼 수 있다. 또한 정기적으로 군량 및 군수 물자의 재고 현황과 군사 시설의 유지보수 상황 등을 보고하였으며, 만약 부족할 경우 이를 보완할 대책을 건의하였다. 이 밖에도 강화부 내 부세징수 문제, 죄인들의 처벌 문제 등 民政에 관한 내용도 다수 수록되었다. 19세기 후반에 들어서면 본격적으로 외국 선박의 출몰 사실이 보고되기 시작한다. 선박의 국적과 종류, 크기 등이 자세히 보고되었으며, 조정에서는 대응 방식을 지시하였다.
특성 및 가치
 19세기 중후반 강화유수부의 군사적 역할과 서해안의 외국 선박 출몰 실태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자료이다. 강화유수의 정세 보고와 비변사의 대응 방식을 분석하면 19세기 중후반 서해안 방어 체제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될 수 있다.
참고문헌
염정섭, 「18세기 중반 江華府 留守의 牧民에 관한 연구-『江都啓錄』을 중심으로-」, 『인천학 연구』 2(1), 인천대학교 인천학연구원, 2003.
집필자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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