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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강도사례(江都事例)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편자미상(編者未詳)
작성시기    :
사년미상(寫年未詳)
형태사항    :
크기: 33.3×22.6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5.0×18.0㎝ / 인장정보: 李王家圖書之章
청구기호    :
K2-3622
M/F번호    :
MF16-308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조선 후기 강화유수부의 각 창고별 재정 상황·전각·전결수·군병수 등을 정리한 事例이다.
서지사항
표제와 내제는 ‘江都事例’이다. 표지 장황은 황색 종이에 斜格卍字 문양이 있는 것이고, 흰색 실로 선장해놓았다. 본문의 판식은 12행에 四周單邊과 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인 인찰공책지를 사용하였다. 지질은 두께가 두꺼운 壯紙를 사용하였다. 본문의 글씨는 12행 31~33자에 따라 반듯한 楷書로 적었다. 제목에 해당하는 부분마다 광곽 상변에 띠지를 붙여 표시해놓았다. 책 수는 7장 1책이다. 인장은 본문 첫 면에 ‘李王家圖書之章’을 날인하였다.
체제 및 내용
강화도서울에서 서해안을 출입하는 길목으로서 군사적·재정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었다. 외국의 군대가 바다를 통해 서울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강화도를 통해야 했으며, 하삼도에서 올라오는 세곡도 강화도를 경유하였다. 조선시대에는 강화도를 보장처로 삼고 유수부를 설치하여 관리하였다. 강화도의 여러 창고에는 유사시를 대비하여 항시 대규모 군향을 비축하였고, 이를 보호하기 위해 산성을 쌓고 진보를 설치하는 등 군사 시설을 강화하였다. 이와 같은 중요성으로 인해 조정에서는 각종 사례와 문서를 통해 강화도의 현황을 점검하고 관리하였는데, 이 사례도 그중 하나이다.
사례의 내용은 戶南庫時在秩, 應入, 戶東庫, 別庫, 府倉時在秩, 各鎭堡時在秩, 未捧秩, 兵庫時在, 去秩, 殿閣, 城墩周廻, 田結摠及牧馬數, 吉祥場, 軍制 순으로 구성되어 있다. 戶南庫에는 銀 3만 9,966냥, 木 284동 19필 9척 5촌, 5승포 4동 32필, 씨를 제거한 목화 400근, 목화 400근, 唐太 200근을 보관하고 있었으며, 수입으로는 完營 別會耗穀과 嶺營 別會耗穀을 作錢한 것·關西에 있는 公田畓 세입, 각 鎭堡의 防軍 급대로 균역청에서 받은 木 등이 있었다. 別庫에는 白米, 甘醬, 淸, 銀, 白蝦醢, 紫蝦醢, 塩眞魚, 蘇魚, 石首魚, 乾石魚, 沉石魚, 乾民魚, 眞魚 등을 저장하였다. 각 鎭堡에서는 軍餉으로 쌀과 콩 수천 석과 木 등을 비축하였다. 殿閣에는 長寧殿, 萬寧殿, 行宮, 奎章閣, 殿牌廳, 內帑庫, 內軍器庫, 客舍 등이 기록되었다. 民戶는 1만 6호, 인구는 남녀 모두 1만 6,350구가 있었으며, 田畓은 3,426결 52부가 있었다. 軍制는 本營과 前後左右 4개 군영이 설치되어 있었다. 本營에는 1만 2,450명, 4營에는 6,611명 도합 1만 9,061명이 소속되었다. 세부적으로 前營은 富平府 1,500명, 左營은 通津府 1,851명, 右營 豐川府 1,093명, 後營 延安府 2,167명이었다.
특성 및 가치
 조선 후기 강화유수부의 행정과 재정 상황, 군제 등을 상세히 기록한 문서로서 강화도의 역사적 위상을 검토하는 데 유용한 자료이다.
집필자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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