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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호산청소일기(護産廳小日記)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호산청(護産廳) 편(編)
작성시기    :
1897 / 광무 1년
형태사항    :
크기: 42.0×28.7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9.7×23.5㎝ /
청구기호    :
K2-3618
M/F번호    :
MF35-1645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1897년(광무 1) 고종의 후궁 엄씨영친왕을 출산하자 산후관리를 위해 경운궁 숙옹재에 설치되었던 호산청의 활동 내용을 정리한 일기이다.
서지사항
표제는 ‘丁酉年護産廳小日記’이다. 표지 장황은 갈색 종이에 斜格卍字 문양이 있고, 주황색 실로 선장해놓았다. 본문의 판식은 14행의 烏絲欄, 四周雙邊, 上內向二葉花紋魚尾인 인찰공책지를 사용하였다. 지질은 비교적 두꺼운 楮紙를 사용하였다. 본문의 글씨는 14행 30~31자에 맞추어 楷書로 적었다. 책 수는 7장 1책이다.
체제 및 내용
호산청은 후궁의 출산을 돕기 위해 설치되었던 임시 관청이었다. 왕비의 경우 출산 준비를 내의원에서 주관하고, 출산 예정일 3개월 전에 産室廳이 설치되었다. 후궁의 호산청은 왕비의 산실청에 비해 격이나 규모 면에서 현저히 떨어졌으며, 출산 1개월 전에 설치하는 것이 규례였다.
이 일기는 고종의 후궁인 엄씨의 출산을 위해 설치되었던 호산청의 활동 기록이다. 엄씨영친왕을 출산한 것은 고종이 아관파천 이후 경운궁으로 환궁한 직후인 1897년(광무 1) 9월 25일이었는데, 당시 엄씨는 궁인의 신분으로서 내명부의 직첩을 받지 못한 상태였다. 고종엄씨가 출산한 이후에 호산청 설치를 명령하면서 규례보다 늦은 9월 25일에 경운궁에 호산청이 설치되었다. 호산청에는 醫官 朴準承·崔錫祐 등 2명을 비롯하여 次知官, 從事官, 別掌務官 등이 배속되었다. 이 외에도 湯藥雇員 金龍煥·劉浩榮과 醫女 竹葉·直香 등이 산후관리를 돕도록 배속되었다.
일기의 형태는 연월일과 날씨, 업무를 수행한 시간을 가장 먼저 적고, 산모의 건강 상태, 식사 및 탕약의 처방 사실, 아기의 수유 및 배변 상황, 아기의 목욕 여부 등을 보고하는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후반부에는 산후관리를 수행한 관원들에 대한 포상 내역도 기록하였다.
구체적인 내용은 9월 25일 亥初 2刻 12분에 경운궁 숙옹재에서 궁인 엄씨가 남자 아기를 출산하였다는 사실로 시작된다. 다음 날에는 산모와 아기가 모두 평안하다는 사실을 왕에게 보고하였고, 엄씨에게 和飯藿湯을 올렸다. 또한 아기와 탯줄을 씻기는 절차와 방법을 논의하였다. 이후로는 엄씨와 아기의 변화 등을 매일 기록하고 있다.
특성 및 가치
 조선의 마지막 황태자였던 영친왕의 출산 사실을 알 수 있는 유일한 자료로서 조선 말 왕실의 산후관리 및 출산문화를 상세히 보여준다.
참고문헌
『護産廳日記』(K2-3619)
국립문화재연구소 역, 『국역 호산청일기』, 민속원, 2007.
신명호, 「조선시대 宮中의 出産風俗과 宮中醫學」, 『고문서연구』 21, 한국고문서학회, 2002.
집필자
임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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