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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세자책봉경룡호방(王世子冊封慶龍虎榜)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정조(正祖) 명편(命編)
작성시기    :
1784 / 정조 8년
형태사항    :
크기: 36.4×23.9cm / 판본: 목판본(木版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4.3×17.4㎝ / 인장정보: 奎章之寶, 茂朱赤裳山史庫所藏 朝鮮總督府寄贈本, 李王家圖書之章
청구기호    :
K2-3550
M/F번호    :
MF35-1897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1784년(정조 8) 元子를 왕세자로 책봉한 경사를 축하하기 위한 慶科로 시행한 庭試 문과·무과급제자 명부이다.
서지사항
표지 서명, 권수제는 ‘王世子冊封慶龍虎榜’이다. 판심제, 서근제는 ‘冊封慶龍虎榜’이다. 표지 장황은 황색 표지에 斜格卍字紋이 있고, 서명은 표지에 직접 墨書하여 線裝하였다. 본문의 판식은 木版本으로 서문은 四周單邊에 上內向二葉花紋魚尾이고, 字數는 6行 11字이다. 본문은 四周雙邊에 上內向二葉花紋魚尾이고, 字數는 13行 24字이다. 책 수는 1冊 114張이고, 본문의 종이는 楮紙를 사용하였다. 앞표지 이면에 ‘赤裳山城’이라 기록되어 있다. ‘甲辰(1784)重陽月 冊封慶龍虎榜 芸香閣藏板’이라 판각된 刊記가 있다. 인장은 제1면 우측 상단에 ‘奎章之寶’, ‘李王家圖書之章’, 우측 하단에 ‘茂朱赤裳山史庫所藏 朝鮮總督府寄贈本’을 날인하였다.
체제 및 내용
체제는 정조가 직접 짓고 원임 규장각 직각 지제교 徐龍輔가 쓴 서문, 시험 정보, 문과급제자 명단, 무과급제자 명단 그리고 부록으로 구성되어 있다. 서문에서 정조1784년 정시를 시행한 배경, 시험 일정, 선발 인원 그리고 방목을 국가에서 인출하여 반사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1782년(정조 6) 宜嬪 成氏에게서 원자가 태어났다. 이 원자가 3세가 되던 1784년(정조 8) 8월 2일에 정조는 원자를 왕세자에 책봉하였다. 왕세자 책봉을 축하하는 경과인 정시를 치렀다.
정시는 문과와 무과만을 치르는 비정기 시험이었다. 정시는 국왕의 품지에 따라 1회의 시험만을 치르기도 하고, 초시와 전시 두 단계로 치르기도 하였다. 이때의 정시는 초시와 전시 두 단계로 시험을 치렀다. 초시는 9월 19일에, 전시는 9월 26일 시행하였으며, 방방은 10월 2일에 시행하였다. 초시와 전시 모두 서울에서 시행되었다.
문과 초시는 시험장을 세 곳으로 나누어 시험을 치렀다. 1소 시험장은 예조로 5,273명이, 2소 시험장은 성균관으로 7,859명이, 3소 시험장은 형조로 4,782명 등 총 1만 814명이 시험에 응시하였다. 초시에서 600명을 선발하였고, 초시 합격을 은사로 내린 자는 88명이어서 총 688명이 초시에 합격하였다. 그러나 명정전에서 있었던 전시 시험장에 들어간 사람은 677명으로 11명의 불응시자가 발생하였다. 전시 답안지를 제출한 사람은 675명으로 시험장에는 들어갔으나, 답안을 제출하지 않은 사람이 2명 있었다.
시관은 초시 1소에 沈頤之·丁範祖 등 4명과 감시관 감찰 李漢龍, 2소에는 申大升·兪恒柱 등 4명과 감시관 李載徽, 3소에는 李得臣·兪誼 등 4명과 감시관 감찰 李敬行 등이었다. 초시의 시험문제는 1소는 表과 賦를, 2소와 3소는 箋과 表를 제술하게 하였다. 전시는 판중추부사 洪樂性이 命官이 되어 시험을 주관하였는데, 시제는 “重熙堂銘”이었다. 독권관은 사직 吳載純, 사직 徐有隣 등 4명, 대독관은 부사직 趙鼎鎭, 부사직 李集斗 등 5명 그리고 시소 승지 金宇鎭 등이었다. 문과에서는 갑과 1인, 을과 2인, 병과 15인 총 18명을 선발되었다. 직부자가 8명으로 鄭㝡成이 장원을 하였다.
무과 초시도 문과와 마찬가지로 시험장을 세 곳으로 나누어 시험을 치렀다. 1소 시험장은 훈련원으로 8,412명이, 2소 시험장은 모화관으로 6,513명이, 3소 시험장은 남별영으로 6,817명 등 총 2만 1,742명이 응시하였다. 초시에 합격한 사람은 3,368명과 은사로 합격을 준 사람 190명 등 총 3,558명이었다. 전시에 응시한 사람은 총 3,889명으로 초시 합격자보다 331명이 더 많다. 이러한 현상은 정시에 직부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원래 전시에 직부하기로 되어 있었던 사람은 409인이었으나, 실제로는 38명 정도가 전시에 응시하지 않은 것 같다.
무과초시 1소시관은 金文淳·徐有大 등 6명과 감시관 대사간 李益煊·지평 朴長卨, 2소 시관은 李致中·李敬懋 등 6명과 감시관 대사헌 蔡弘履·사간 李身晦, 3소 시관 李崇祜·李昌運 등 6명과 감시관 지평 李祉永·헌납 兪岳柱 등이었다. 초시의 시험과목은 철전 110보, 유엽전 2분 중 하나의 기예만을 선택하여 시험을 치렀다. 전시는 여러 곳으로 나뉘어서 치러졌다. 창덕궁 내의 登賢門(1, 2, 3소), 丹楓亭 分所, 不老門 分所 그리고 궐 밖의 慕華館 分所, 洗馬坪 分所, 壯元亭 分所, 訓練院(分1, 2소), 君子亭 分所 등 궐내의 5곳과 궐 밖의 6곳 등 11곳에 시험장이 설치되었다. 각 분소마다 命官, 考官, 參考官, 試所 承旨 등 8~13명의 시관이 배치되어 시험을 치렀다. 전시의 시험과목은 貫革 2발 적중, 騎芻·유엽전·조총 각 1발 적중, 講經 粗 이상 등 5가지 과목에서 2과목을 선택하여 치러야 했다. 단 직부인들은 鐵箭 90보, 기추·관혁·유엽전·조총·鞭芻 각 1발 적중 등 7과목 중에서 1과목을 선택하게 하였다. 무과급제자는 갑과 1인, 을과 3인, 병과 2,683인 등 총 2,687명을 선발하였는데, 한량 高廷煥이 장원을 하였다.
방목에 실린 문과·무과급제자의 기본적인 정보는 동일하게 기록되어 있다. 급제자 정보는 본인 정보와 가족 정보로 구분되어 있다. 본인 정보는 ① 응시 당시 직역인 前歷, ② 나이, ③ 본관, ④ 거주지, ⑤ 직부자인 경우 직부라고 적었다. 가족 정보는 ① 부친의 직역, ② 부친의 이름, ③ 안항, ④ 양자로 들어간 경우에는 생부도 기재하였다.
부록에는 서울과 지방의 급제자 인원을 정리하였다. 문과급제자는 서울 10명, 원춘도 1명, 평안도 2명, 홍충도 4명, 전라도 1명 등이었다. 무과급제자는 서울 716명, 경기 238명, 개성부 65명, 강화부 8명, 원춘도 78명, 황해도 562명, 평안도 658명, 홍충도 96명, 전라도 84명, 경상도 95명, 함경도 92명 등이었다.
참고문헌
『正祖實錄』 권18, 정조 8년 8월 2일(을유).
『承政院日記』 권84, 정조 8년 9월 21일(계유).
집필자
원창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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