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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어고은사절목(御考恩賜節目)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규장각(奎章閣) 편(編)
작성시기    :
1795 / 정조 19년
형태사항    :
크기: 36.3×27.1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6.0×20.8㎝ /
청구기호    :
K2-3547
M/F번호    :
MF16-308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국왕이 儒生課試의 시권을 직접 채점하여 초시합격[直赴會試] 혹은 점수를 지급하는 恩賜를 내리는데, 이러한 은사를 받은 유생의 과거 응시 定式과 시행절목을 수록한 것이다.
서지사항
판심제, 표지 서명은 ‘御考恩賜節目’이다. 표지 장황은 황색 표지에 斜格卍字紋이 있고, 서명은 표지에 직접 묵서하여 線裝하였다. 본문의 판식은 四周單邊인 烏絲欄에 필사하였고 字數는 5行 12字이다. 책 수는 1冊 12張이고, 본문의 종이는 楮紙를 사용하였다. 앞표지 이면에 ‘乙卯(1795)八月初九日大臣備局堂上引見入待時行禮曹判書 閔 所啓昨年定式後, 御考直赴給分人, 自內閣成給帖文, 而儒生赴擧時, 納于內閣, 憑考案冊, 然後始爲許赴矣. 雖自內閣主管, 而許赴草記, 則似當於內閣憑考之後, 以其許赴人姓名, 一一知委臣曹, 則自臣曹, 又當以草記擧行, 故敢此仰達矣. 上曰, 依爲之’라는 기록이 있다. 제1면의 본문에 ‘甲寅(1794)三月初二日’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체제는 국왕이 직접 채점하여 초시합격과 점수를 지급하는 恩賜를 받은 유생의 과거 응시 定式이 만들어지게 된 경위와 정식을 시행하기 위한 9개 조목의 절목으로 구성되어 있다.
조선 전기부터 성균관 유생과 사학 생도의 학업을 격려하고 권장하기 위해서 성균관과 사학 그리고 지방에서 관찰사가 치르는 각종 課試가 있었다. 성균관과 사학 그리고 지방에서 정기적으로 치르는 課試에서 우수한 성적을 받은 자들에게는 생원진사시 혹은 문·무과의 회시에 直赴할 수 있는 특혜를 주었다. 생원진사시나 문·무과 회시에 直赴한다는 것은 과거시험의 초시를 치르지 않아도 초시합격을 인정해준다는 의미이다. 회시직부도 엄청난 특혜인데, 성종 대부터 성균관 유생들 중에서 과시에 우수한 성적을 낸 사람은 문·무과의 전시직부를 하사하기 시작하였다.
과시에서 우수한 성적을 낸 유생에 대한 특혜가 전란이 끝난 이후에는 더욱 확대되었다. 유생들이 직부회시나 직부전시를 받을 수 있는 과시의 종류가 늘어났다. 節日製, 黃柑製, 殿講, 春秋到記科와 儒生應製 등의 과시가 그것이다. 또한 숙종은 사관을 성균관에 파견하여 儒生應製를 치르게 하고 국왕이 직접 점수를 매겨서 급제를 하사하였다. 정조 역시 숙종의 전례를 따라 규장각 각신에게 儒生應製를 주관하게 하고, 정조 자신이 채점하여 賞給을 시행하였다. 다만 바로 급제를 내리지 않고, 초시합격이나 점수를 주는 은사를 상급으로 내렸다.
1794년(정조 18) 예조에서는 전례에 따라 초시합격 또는 점수를 받았던 유생의 명단을 올려 앞으로 있을 庭試에 응시하게 하겠다는 草記를 올렸다. 이때 정조는 국왕이 직접 채점하여 초시합격이라는 은사를 받은 유생은 은사를 받은 횟수만큼 회시에 응시하게 하는 것으로 정식으로 삼도록 명하였다. 사실 각종 과시에서 초시합격이라는 은사를 여러 번 받았다고 하더라도, 그 혜택은 한 번만 받을 수 있었다. 정조는 국왕이 채점하여 내린 恩賜는 다른 시관들이 채점한 것과 달리 특별하기 때문에 은사를 받은 횟수만큼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하고자 하였다.
정조의 비답으로 예조판서·성균관 대사성·규장각 각신 등이 입시하여서 방안을 논의하였다. 정조가 친히 채점하는 유생 과시는 규장각에서 주관하였다. 그러므로 국왕이 채점한 시권의 점수는 과거를 주관하는 예조와 유생들이 속한 성균관에도 통보가 되어야 했다. 과시와 과거와 관련된 기관들이 국왕이 채점한 유생 과시의 입격자 정보를 체계적으로 공유하여 원활하게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규식이 필요하였다. 그 결과 예조에서는 국왕이 채점하여 은사를 받은 유생들이 과거에 응시할 때의 매뉴얼인 절목을 마련하였다.
절목의 내용은 첫째, 한 사람이 국왕이 채점한 과시에서 여러 차례 초시 합격의 은사를 받은 경우는 은사 횟수만큼 회시에 응시할 수 있다. 이 정식이 정해지기 이전에 은사를 받은 사람은 소급 적용하지 않는다. 둘째, 유생과시의 시권을 국왕이 채점하여 나누어준 후에 규장각에서는 傳旨에 따라서 직부 또는 점수를 지급하는 등의 賞典을 구분하여 유생에게 帖文을 지급한다. 셋째, 국왕이 채점한 유생과시 시권의 賞格에 대한 전교가 승정원에 내려지면, 승정원에서는 규장각에 보내서 보이고 난 후에 유생에게 시권을 지급한다. 유생은 시권을 받은 후에 반드시 규장각에 가서 납부하면 내각에서는 첩문을 지급한다. 넷째, 규장각예조는 각각 ‘御考直赴給分案’을 만들어서 매번 국왕이 채점한 시권이 반사된 후에 즉시 기록하고 국왕에게 보고한다. 다섯째, 국왕이 채점하는 유생과시에 입격한 유생은 과거에 응시할 때 첩문을 규장각에 납부하면 규장각에서 ‘御考直赴給分案’과 대조하여 四館과 예조에 알려서 과거에 응시할 수 있게 한다. 여섯째, 유생이 받은 첩문은 과거를 치른 후에 규장각에서 성균관에 알리면 성균관에서는 첩문을 받아서 표를 그려서 표시하고, 표시한 것을 국왕께 아뢴다. 일곱째, 여러 차례 직부와 점수를 얻는 은사를 받은 유생에게는 매번 첩문을 지급하여 과거를 치를 때마다 첩문 하나씩을 사용하고, 사용한 첩문은 시험이 끝난 후에 성균관에서 받아 규장각에 보내서 표시하게 한다. 여덟째, 누차 점수를 받은 유생은 과거시험 때마다 초시에 응시하여 恩賜로 시권을 제출하고, 한 사람이 직부와 점수를 겸하여 받은 경우에 점수를 받은 첩문을 사용하려면 초시에 응시해야 한다.
참고문헌
『承政院日記』 91책, 정조 18년 3월 1일(무자); 3월 3일(경인).
『正祖實錄』 권39, 정조 18년 3월 3일(경인).
원창애, 「조선시대 문과 직부제 운영 실태와 그 의미」, 『조선시대사학보』 63, 2012.
집필자
원창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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