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입력기

자료열람

고서

신묘경과증광사마방목(辛卯慶科增廣司馬榜目)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고종(高宗) 명편(命編)
작성시기    :
1902 / 광무 6년
형태사항    :
크기: 33.3×22.3cm / 판본: 정리자판(整理字版)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2권(卷) 2책(冊) / 판식: 반곽(半郭) 25.9×17.7㎝ / 인장정보: 李王家圖書之章
청구기호    :
K2-3546
M/F번호    :
MF35-1897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1891년(고종 28) 고종, 명성왕후, 왕세자의 환후가 회복된 것을 경축하기 위해서 치른 증광 생원진사시 입격자 명부이다.
서지사항
판심제는 ‘辛卯增廣司馬榜目’이고, 서명은 판심제를 근거하였다. 표지 서명은 ‘司馬榜目 辛卯增廣’이다. 표지 서명 ‘司馬榜目’ 밑에 冊次가 ‘上·下’로 기재되어 있다. 표지 장황은 색 바랜 황색 표지이고, 서명은 四周雙邊의 籤紙에 인쇄하여 線裝하였다. 본문 판식은 整理字版으로 四周單邊에 上內向二葉花紋魚尾이고 字數는 11行 20字이다. 책 수는 2卷 2冊이고, 본문의 종이는 楮紙를 사용하였다. 권말에 ‘壬寅(1902)仲秋 內閣活印上之卽祚二十九年辛卯(1891)慶科增廣司馬榜目卷之二終’이라 기록하였다. 인장은 각 책마다 제1면 우측 상단에 ‘李王家圖書之章’을 날인하였다.
체제 및 내용
본서는 고종 전교 모음, 생원진사시를 주관한 시관을 밝힌 恩門, 생원시 입격자 명단, 진사시 입격자 명단, 有司 명단, 부록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증광시는 나라에 큰 경사가 있을 때에 기쁨을 백성과 함께하기 위해서 치르는 慶科로서 생원진사시, 문과, 무과, 잡과 등 각종 과거를 식년시에 준해서 치렀다. 1890년(고종 27) 4월 대왕대비인 신정왕후가 사망하여 흉례를 치르느라 몸이 쇠약한 데다가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간절기에 고종명성왕후가 병환이 나고, 왕세자 역시 침전에 문안하느라 건강을 상하였다가 모두 회복되었다. 11월 초에 고종, 명성왕후, 왕세자의 병환이 회복된 경사를 진하하는 의식이 권정례로 근정전에서 거행되었고, 사면령이 반포되었다. 그와 함께 전례에 따라 과거를 시행하게 되었다. 三殿의 병환이 회복된 것은 큰 경사이므로 증광시로 시험을 준비하였으나, 그해에 시험을 다 치르기는 시일이 촉박하여 다음 해인 1891년(고종 28)에 시행되었다.
생원진사시 초시는 서울과 각 도별로 각각 치러졌다. 1891년 2월 25일 初場 시험, 2월 27일 終場 시험을 치르고 2월 29일 합격자 발표가 있었다. 회시는 초시 합격자를 서울에 모아서 시행하였다. 초장 시험은 1891년 5월 22일, 종장 시험은 5월 24일, 입격자 발표는 2월 26일, 방방의는 6월 15일 근정전에서 행하였다.
본 방목에는 맨 앞에 5월 8일, 21~23일, 6월 16일의 전교 내용을 기재하였다. 고종의 전교는 생원진사시 회시 직부 대상과 특정 사람들에게 恩賜로 생원진사시 입격을 내리는 것이었다. 이때 陞補試·公都會에 입격한 사람 모두를 회시에 직부하게 하였다. 은사로 생원진사시에 입격한 사람은 서연관 金洛鉉의 손자, 故 贊善 任憲晦의 아들, 세종의 아들인 평원대군예종의 아들인 제안대군의 종손, 서울에서 치른 초시인 한성시·지방에서 치른 초시인 향시·應製試·陞輔試·公都會 방목에서 나이 18세인 사람, 시임·원임 사부와 빈객 그리고 춘방과 시임 계방 相禮의 아들·사위·동생·조카 중에 초시에 합격한 사람, 만약 시임·원임 사부와 빈객 그리고 춘방과 시임 계방 相禮의 아들·사위·동생·조카가 없다면, 그들의 형·손자·同異姓 4촌 중 한 사람, 문충공 金尙容의 종손, 충정공 尹集의 祀孫, 先正 문정공 趙光祖의 종손, 문간공 成渾의 사손, 익정공 洪鳳漢의 종손, 태조의 딸 慶順公主의 사손, 성종의 딸 淑惠翁主·선조의 딸 貞謹翁主의 종손, 소현세자의 딸 慶淑郡主의 사손 그리고 育英學員으로 초시에 합격한 사람 등이었다.
증광 생원진사시가 끝난 후에 고종은 70세 이상으로 생원진사시에 입격한 사람들에게 바로 정3품인 돈녕부 都正에 제수하였다. 이처럼 1891년 증광 생원진사시에서는 恩賜科, 陞補·合製·公都會에 합격하여 직부된 사람까지 포함하여 생원 238명과 진사 559명 총 797명을 선발하였다.
은문에는 會試 1所와 2所의 시관이 기록되어 있다. 1所 시관은 독판내무부사 金永壽, 협판내무부사 洪承憲, 형조참의 金錫圭, 홍문관 교리 朴箕陽, 부사과 張承遠 그리고 監試官 사헌부 감찰 徐行輔 등 6명이다. 2所 시관은 독판내무부사 趙康夏, 형조참판 李容稙, 부호군 金晩秀, 부사과 柳南植 그리고 감시관 감찰 金載善 등 6명이었다.
생원시 입격자는 장원 金思卨을 포함한 1등 5명, 2등 25명, 3등 208명 총 238명이 기재되어 있다. 진사시 입격자는 장원 徐夢龍을 비롯한 1등 5명, 2등 25명, 3등 529명 총 559명이 기재되어 있다. 입격자 정보는 입격자 자신과 가족 정보로 분류된다. 입격자 정보는 ① 응시 당시 직역인 前歷, ② 字, ③ 생년, ④ 본관, ⑤ 거주지, ⑥ 시험장, ⑦ 최종시험 응시과목 등이다. 가족 정보는 ① 부친의 직역, ② 부친의 이름, ③ 가족 현황(조부모와 부모 모두 생존[重侍下], 부모 모두 생존[具慶下], 아버지만 생존[儼侍下], 어머니만 생존[慈侍下], 부모가 모두 사망[永感下]), ④ 안항(생원진사시에 입격한 형제) 등이다.
有司는 생원시 입격자 17명, 진사시 입격자 17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여기서 유사는 아마도 방목을 간행하는 일을 담당했던 사람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부록에는 1891년 시행된 증광 생원진사시와 관련된 정보들이 수록되어 있다. 첫째, 방목유사이다. 방목을 만드는 데에 역할을 하는 榜中色掌, 收券色掌, 恩門色掌, 齊馬首, 貢布色掌이 기재되어야 하는데, 이 시험의 경우 榜會가 이루어지지 않아 정해지지 못하였다. 둘째, 回榜이다. 생원진사시에 입격한 지 60년이 된 사람에게는 回榜이라 하여 음악이나 음식물을 내려주거나 관직을 승진시키는 등 養老의 뜻을 보였다. 1891년 생원진사시에서 鄭駿和·李寅周 등이 회방하였다. 고종은 생원으로 회방한 정준하한성부 판윤에 발탁하였으며, 생원 이인주는 특별히 가자하라고 하였다. 셋째, 聯璧이다. 연벽은 같은 해 시험에 나란히 입격한 형제를 말한다. 이해에는 연벽이 여섯 형제나 되었다. 金晦秀·明秀 형제, 洪承哲·承宇 형제, 李翰相·龍相 형제, 李年夏·純夏 형제, 宋鍾華·鍾民 형제, 李浩稙·敏稙 형제 등이었다. 넷째, 초시 정보이다. ① 초시 일자는 초장이 2월 25일, 종장이 2월 27일에 시행되었다. ② 서울에서 시행된 초시 1, 2소 시험장의 시관, 시험문제, 시험과목 장원, 합격자 발표 날짜 등이 기재되어 있다. ③ 각 道에서 시행된 초시[鄕試]의 시관·초장 장원·종장 장원을 기재하였다. 다섯째, 會試 정보이다. ① 회시 초장, 종장, 출방, 방방 일자를 기재하였다. ② 시험장 1, 2소의 시험과목과 시험문제를 기재하였다. 여섯째, 서울과 도별 생원진사시 입격자 총인원과 생원시·진사시 입격자를 구별하여 기재하였다. 일곱째, 방목 간행 정보를 기재하였다.
참고문헌
『高宗實錄』 권27, 고종 27년 11월 3일(기사); 11월 8일(갑술); 11월 10일(병자).
『高宗實錄』 권28, 고종 28년 2월 13일(정미); 3월 1일(을축); 5월 23일(병술).
집필자
원창애

PDF서비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