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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기(國忌)

자료UCI : G002+KSMC+KSM-WO.0000.0000-20170406.B02416402_1-DES.053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편자미상(編者未詳)
작성시기    :
[1837] / 헌종 3년
형태사항    :
크기: 40.3×17.7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첩장(帖裝) / 수량: 1첩(帖) / 판식: 반곽(半郭) 36.7×17.4㎝ / 인장정보: 藏書閣印
청구기호    :
K2-2924
M/F번호    :
MF16-295
기록시기    :
[1837~1843年(憲宗 3~9)]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조선 太祖代부터 憲宗代까지 국왕과 왕비의 忌辰日을 기록한 첩이다.
서지사항
서명은 표지 서명을 따랐다. 표지 장황은 황갈색 종이로 하였는데, 후에 개장한 것으로 보이나 개장 기록은 없다. 折帖本이다. 본문은 6行 字數不定으로 기록하였다. 본문의 종이는 필사 후에 책 크기에 맞게 재단하여 붙인 것으로 보인다.
체제 및 내용
이 자료는 헌종 연간에 기록된 것으로 ‘國忌’라는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조선시대 국왕과 왕비의 기신일을 적어 놓은 첩이다. 국왕은 헌종, 왕비는 그의 비인 효현왕후까지 기재되었다. 국왕과 왕비 대수의 차례대로 시호명을 쓰고 그 아래에 기신일인 월일과 능호를 기재하였다. 덕종원종·진종 등 추존왕도 포함되어 있다. 능호 아래에는 坐向을 겹줄로 썼다. 좌향이 앞과 같을 경우에는 同이라 썼다. 시호명은 가상된 시호가 있을 경우 그 옆에 작은 글씨로 써넣고, 시호명 아래에 生年의 干支와 魂殿名을 추기하였다. 선조 이전은 혼전명이 미상인 경우가 많다.
그다음에는 국왕의 후궁과 세자, 세자빈, 세손의 기일과 園墓名, 원묘의 소재지와 거리를 기록하였다. 그들은 인빈 김씨, 숙빈 최씨, 정빈 이씨, 장헌세자, 헌경혜빈 홍씨, 순회세자, 공회빈 윤씨, 소현세자, 민회빈 강씨, 의소세손, 문효세자, 영빈 이씨, 현목유빈 박씨 등이다.
그다음에는 탄일을 기재하였다. 이 첩을 기록할 당시의 국왕과 대비 이상만을 대상으로 하였다. 대전은 신묘(1831) 6월 17일, 대왕대비전은 기유(1789) 5월 15일, 왕대비전은 무진(1808) 12월 초6일, 대비전은 신묘(1831) 정월 22일이다. 여기에서 대전은 헌종을 가리킨다.
국기를 기록한 자료는 여러 형태로 많이 남아 있다. 그중에 역시 헌종 연간에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소위 ‘國忌板’도 있다. 조선시대 태조부터 헌종까지 국왕과 왕비의 기신일을 새겨 놓은 나무판이다. 여기에도 세자 이하의 기일과 대전 등의 탄일이 아울러 새겨져 있다. 따라서 이 자료는 국기판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국기판이 물론 이때 처음으로 만들어진 것은 아닌 것으로 보이며, 당시는 양반 사대부 이상이 국기를 외우는 일을 당연시 여기던 시절이었다.
참고문헌
朝鮮王朝實錄
집필자
임민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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