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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종태황제 어장주감의궤(高宗太皇帝 御葬主監儀軌)

자료UCI : G002+KSMC+KSM-WO.0000.0000-20170406.B02416402_1-DES.049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이왕직(李王職) 편(編)
작성시기    :
1919
형태사항    :
크기: 42.5×29.6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3권(卷) 3책(冊) / 판식: 반곽(半郭) 26.9×20.8㎝ / 인장정보: 奉謨堂印
청구기호    :
K2-2920
M/F번호    :
MF35-1890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1919년 1월 21일 慶運宮 咸寧殿에서 昇遐한 고종황제(1852~1919)의 國葬과 관련된 사항을 정리한 의궤이다.
서지사항
표지의 장황은 황갈색 종이 위에 綿布를 덧대었다. 題簽은 흰색 비단위에 墨書하였는데, 흰 비단 뒤에 붉은 비단을 덧대었다. 3卷 3冊으로 장차는 ‘上’, ‘中’, ‘下’이다. 본문은 四周雙邊 上下向二葉花紋朱魚尾의 朱絲欄에 10行 20字로 기록하였다. 종이는 두꺼운 壯紙를 사용하였다. K2-2921과 K2-2922가 이 책의 原稿本으로 보인다. 目錄 제1면에는 ‘奉謨堂印’이 날인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卷上·卷中·卷下 3책의 필사본이다. 권상·권중·권하에 각각 목록이 있으며, 조선의 의궤 제작 방식에 따라 편찬되었다. 다만, 일본 연호인 ‘大正’을 써서 연도를 표기하였다. 1919년 1월 24일 御葬主監提調郎廳의 회동을 시작으로 3월 5일에 虞主를 경운궁에 返虞하기까지 국장과 관련된 거의 모든 일을 의궤의 형식으로 정리하였다. 어장주감은 조선시대 국장도감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장서각에는 본 의궤의 ‘권중’과 동일한 『고종태황제어장주감의궤』(K2-2921) 1책이 소장되어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권상의 「時日」에는 1919년 1월 24일 제조낭청경운궁 안에서 만나 회의를 하고, 2월 11일에는 摠護員이 諡冊文과 哀冊文의 草圖書에 대하여 순종에게 보고하고, 27일에는 殯殿에 諡號를 올리고 발인 준비를 시작하는 등의 일정이 기재되어 있다. 발인의 경우 3월 3일 오전 8시에 시작하여 오후 2시 30분 청량리에서 路祭를 지내고, 오후 11시 山陵 침전에 도착한 다음, 4일 오후 10시에 下玄宮을 행한 것으로 되어 있다. 반우에 대한 사항은 다음 날 5일 오후 1시에 시작하여 오후 4시에 경운궁 함녕전에 도착하기까지의 과정이 적혀 있다. 「座目」에는 총호원 子爵 閔泳奎, 提調 자작 閔泳徽, 伯爵 李完用, 자작 李載崐을 비롯하여 都廳·郎廳·監造員·別監董 등의 명단이 실려 있다. 「下敎及上啓」에는 총호원 민영규와 本職長官 등의 보고와 순종의 답이 날짜순으로 정리되어 있다. 이때 고종의 行狀은 李載完, 시책문은 이재곤, 애책문은 민영휘 등이 제술하 였고, 『喪禮補編』을 참고하여 誌石, 服玩, 大小轝, 服色 등을 준비하였다고 하였다. 輓章 담당은 민영규, 박영효, 윤택영 등 120여 명이었는데, 일본인도 3명 있었다. 우주는 2월 26일에 조성하여 德弘殿에 잠시 봉안해 두었고, 혼전과 山陵 제사의 祭器, 발인 때 쓰일 각종 도구 등도 기재하였는데, 그 가운데 大轝와 肩轝의 服色諸具와 外梓宮與諸具, 방상씨가면, 竹散馬, 만장 1백축 등은 하현궁 후에 태우도록 하였다. 글씨로만 표기된 「발인발차」도 실려 있는데, 발인 행렬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각종 服色과 冊寶封裹式, 발인할 때의 일정·도로·軍丁 집합 장소, 만장, 시책과 시보 등에 대한 사항은 별도로 정리되어 있다.
권중에는 「애책」과 「행장」, 「지석」, 「표석」을 비롯하여 「견여」, 「외재궁」, 「명기」 등 국장을 거행할 때 필요한 중요 의물 제작에 대한 내용이 그림과 함께 정리되어 있다. 애책의 경우 靑玉 72근, 증옥은 碧玉 1塊를 준비하였다. 표석은 잠시 제작을 미뤄 두었다고 기재되어 있다.
권하에는 「길의장」, 「흉의장」, 「각양의물」 및 제기 등을 제작하는 데 필요한 재료와 물량이 기재되어 있다. 끝으로 「賞典」이 본권의 1/3 정도의 분량을 차지하고 있는데, 총호사와 각 주감의 제조, 왕실 가족과 귀족, 內人 등에게도 선물과 돈을 하사하였다. 왕세자도 별도의 하사금을 내렸다. 掌侍司와 서무과, 회계과, 영선과, 祭祀課 등의 임시 고용인들에게도 주었는데, 일본인들이 다수이다.
특성 및 가치
조선에서는 국왕이 승하하면 국장도감, 빈전혼전도감, 산릉도감 등 삼도감을 임시로 설치하여 약 5개월 동안의 국장을 거행하였고, 각 도감의 의궤를 편찬하였다. 반면, 1919년 일제강점기에는 고종이 승하하자 어장주감, 빈전혼전주감, 산릉주감 등 삼주감을 설치하여 국장을 수행하였고, 각각의 의궤를 편찬하였다. 현재 장서각에는 『高宗太皇帝山陵主監儀軌』(K2-2284, K2-2285), 『高宗太皇帝殯殿魂殿主監儀軌』(K2-2918, K2-2919), 『高宗太皇帝御葬主監儀軌』(K2-2920, K2-2921) 등 삼주감의 의궤가 모두 소장되어 있으므로 3종의 의궤를 함께 살펴보면, 일제강점기에 거행된 고종의 국장 거행 상황을 구체적으로 알 수 있다.
참고문헌
藏書閣所藏儀軌解題』, 韓國精神文化硏究院, 2002.
집필자
김세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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