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입력기

자료열람

고서

계제사등록(稽制司謄錄)

자료UCI : G002+KSMC+KSM-WO.0000.0000-20170406.B02416402_1-DES.046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예조 계제사(禮曹 稽制司) 편(編)
작성시기    :
1659 / 현종 즉위년
형태사항    :
크기: 39.4×25.2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31.9×21.0㎝ / 인장정보: 禮曹之印, 藏書閣印
청구기호    :
K2-2917
M/F번호    :
MF35-1887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1659년(현종 즉위) 5월에서 같은 해 11월까지 효종의 승하 후 진행된 국상 절차의 과정을 기록한 등록이다.
서지사항
1971년에 표지를 개장하였으나 원표지가 남아 있어 그 원형을 알 수 있다. 표지 장황은 황갈색 종이에 斜格卍字 문양이 있다. 우측 상단에는 ‘己亥’라는 간지가 있다. 제1면의 하단에는 꼬리제첨이 붙어 있다. 본문은 四周單邊 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의 木板 印札空冊紙에 10行 字數不定으로 기록하였다. 제1면에는 ‘藏書閣印’이, 본문에는 ‘禮曹之印’이 날인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계제사禮曹의 屬司 중 하나로, 의식과 朝會, 經筵, 史官, 學校 등의 업무를 담당하였다. 표제로 보면 계제사의 운영과 관련된 등록으로 추정되나, 본서는 1659년 5월 4일 효종창덕궁에서 승하한 뒤에 진행된 국장 절차를 기록한 등록이다. 내용의 상단에는 頭註가 기록되어 있어 내용 파악이 용이하다.
내용을 보면, 효종의 승하를 시작으로 같은 날 예조에서 국상의 진행을 위해 戒令이나 목욕 일시 등과 관련해 제출한 단자를 제시하였다. 5월 5일 嗣位節目이 제정되었고, 복제는 왕세자의 경우 斬衰三年으로, 대왕대비는 齊衰期年으로 결정되었다. 대왕대비는 인조의 계비인 慈懿大妃이다. 그러나 복제와 관련해서는 직후부터 논란이 되어, 영의정 鄭太和를 비롯해 좌의정 沈之源, 延陽府院君 李時白, 完南府院君 李厚源, 영돈녕부사 李景奭 등은 時王之制를 따라 기년으로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하였고, 宋時烈宋浚吉 역시 이에 동의하였다. 이후 梓宮 加漆, 大斂, 成服 등 국상의 절차가 진행되는 와중에 5월 6일에 兩司에서 종친 및 문무백관의 복제에 대해 문제를 제기하였고, 5월 8일에는 성균관 진사 南二星이 上書하여 양사의 논의를 비판하였다. 5월 11일에는 시호 등이 결정되어, 시호는 宣文章武神聖顯仁으로, 묘호는 孝宗으로, 殿號는 敬慕로, 능호는 寧陵으로 결정되었다. 5월 15일에는 諡狀製述官으로 영돈녕부사 이경석, 誌文製述官으로 이조판서 송시열 등을 차정하였다. 이후 산릉의 선정과 관련해 파주長陵이 있는 월롱산광주헌릉梨樹洞, 건원릉, 英陵 弘濟洞 등에 대해 간심이 진행되었으며 지리한 논란을 거쳐 수원으로 결정되었다. 6월 6일에는 장령 황준구허목 등이 복제 논의를 다시 할 것을 건의하자 이에 대해 논란이 진행되었는데, 결국 시왕지제, 즉 國制에 의한 것으로 결정되었다. 7월 25일 예조에서 發引請諡上諡節目을 제정하여 보고하였고, 8월 21일에 반우 시 배종절목을 보고하였다. 9월 27일 산릉의 開金井을 하였고, 10월 29일에 下玄宮을 하였으며, 11월 10일에 졸곡 후 국왕을 비롯한 대왕대비와 왕비의 易服을 시행하였다. 11월 17일 다음 해 현종의 즉위 원년을 기념한 증광시 관련 논의로 내용을 맺고 있다.
특성 및 가치
효종의 국장 절차를 이해하는 데 참고가 되는 자료이다. 특히 효종의 국상 시 대왕대비의 복제와 관련해서 이른바 禮訟 논쟁이 발생하였는데, 본서는 그 논쟁과 관련된 기록을 수록하고 있어 참고가 된다. 효종의 국상과 관련해서는 장서각에 소장된 『孝宗國恤謄錄』(K2-3504)이 참고가 된다.
집필자
이근호

PDF서비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