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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종대왕국휼등록(景宗大王國恤謄錄)

자료UCI : G002+KSMC+KSM-WO.0000.0000-20170406.B02416402_1-DES.045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예조(禮曹) 편(編)
작성시기    :
1726 / 영조 2년
형태사항    :
크기: 39.3×25.0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31.5×20.7㎝ / 인장정보: 禮曹之印
청구기호    :
K2-2916
M/F번호    :
MF35-629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1724년(영조 즉위) 8월 景宗 승하 이후부터 1726년(영조 2) 10월 宗廟에 祔廟될 때까지의 국상 절차를 기록한 등록이다.
서지사항
표지 장황은 황갈색 종이에 斜格卍字 문양이 있다. 본문은 四周單邊 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의 木板 印札空冊紙에 10行 字數不定으로 기록하였다. 印札空冊紙의 板口 상단에는 ‘禮曺上’이 있다. 본문에 날인된 도장은 ‘禮曹之印’으로 보인다.
체제 및 내용
본서는 경종의 국상 절차를 날짜순으로 정리한 책으로, 내용별로 頭註를 달아 내용 파악이 용이하다. 주요 내용을 보면, 1724년 8월 24일 경종창경궁 환취정에서 승하한 것을 시작으로 8월 25일 예조에서 襲奠, 告文 등 국상 절차에 필요한 단자를 올렸고, 8월 26일에는 祭奠看品과 百官陪祭, 議政府 進香 등과 관련된 단자를 올렸다. 9월 1일 경종의 혼전이 文政殿으로 결정됨에 따라 이곳에 있던 경종단의왕후의 혼전인 永徽殿을 옮길 때 사용할 告文祝式과 관련해서 홍문관에서 『通典』 등의 전거를 고증한 내용이 보고되었고, 9월 2일 移安을 위한 길일이 결정되었다. 9월 5일 예조에서 魂殿 應行事目을 보고하였고, 9월 6일 영휘전에 嗣位告文을 고하였다. 9월 7일 대왕대비전의 常膳이 회복되었고, 9월 11일에는 경종영조의 왕위 계승과 유사한 명종조의 실록을 고출한 내용이 보고되었으며, 9월 19일에는 관상감에서 경종의 혼전에 의정부종친부 등 관원이 진향하는 길일을 추택해서 보고하였다. 10월 14일 산릉 火巢의 경계를 정하도록 하였고, 총호사 이광좌 등이 간심한 결과, 경계가 결정되고 화소 내 민전에 대한 보상을 하게 하였다. 이후 재궁에 上字를 쓰는 의식과 結裹 등을 거쳐 12월 16일 발인하여 산릉에 下玄宮하였다. 1725년(영조 1) 1월 27일 산릉의 曲墻을 개축하도록 지시하였고, 3월에는 애도를 위해 파견된 勅使의 致弔禮가 있었다. 4월 21일에는 종묘의 虞主 埋安을 위한 장소가 여의치 않자 동쪽 담장을 3칸 정도 물려서 쌓기로 하였다. 8월 25일에 練祭가, 다음해인 1726년 8월 25일에 祥祭가 행해졌고, 10월 7일에 禫祭가 거행되었으며, 10월 13일에 부묘 의식을 거행하였다. 내용은 11월 21일이 예조에서 제주 목사가 보낸 오징어 등이 올라왔으므로 봉입하겠다는 내용으로 마감하였다.
특성 및 가치
경종의 국상 절차를 이해하고자 할 때 필요한 자료이다. 경종의 국상과 관련해서는 장서각에 본서 이외에도 『庚辰年國恤草日記』(K2-2913)가 소장되어 있다. 『경진년국휼초일기』는 초서로 작성되었으며, 내용도 1724년 경종 승하 이후부터 같은 해 12월 24일까지만 기록되어 있다. 이에 비해 본서는 부묘까지 수록하였다.
집필자
이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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