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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왕세손회강기(王世孫會講記)

자료UCI : G002+KSMC+KSM-WO.0000.0000-20170406.B02416402_1-DES.159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이정보(李鼎輔) 찬(撰)
작성시기    :
1762 / 영조 38년
형태사항    :
크기: 31.3×18.5cm / 판본: 척인판(拓印版) / 장정: 첩장(帖裝) / 수량: 1책(冊) /
청구기호    :
K2-2784
M/F번호    :
MF16-295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1762년(영조 38) 4월 25일에 영조와 당시 세손이던 정조가 會講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는 拓印本이다.
서지사항
앞표지는 떨어져 나가서 없으나 뒤표지로 미루어 보아 무늬가 없는 황갈색 종이로 장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拓印하여 折帖本으로 장정하였다. 卷首의 뒷면이 앞표지의 역할을 대신하고 있으며, 표지 서명은 후대에 다시 쓴 것으로 보인다. 본문은 9折로 折마다 7行 16字로 하였다.
체제 및 내용
英祖實錄』과 『承政院日記』에 따르면, 영조1762년 4월 25일에 慶熙宮 景賢堂에 거둥하여 세손 정조와 회강을 하였으며, 李鼎輔·洪象漢·朴聖源을 비롯하여 당시 세손 교육을 담당했던 관원들이 함께 참여하였다.
승정원일기』에 실린 회강 기사와 비교해 본 결과 본서는 앞부분이 1장 정도 결락된 것을 확인하였다. 회강 내용을 보면, 영조는 나라를 세우는 것은 하늘에 오르는 것처럼 어렵지만 나라가 망하는 것은 털을 태우는 것처럼 쉽다고 하면서, 세손[정조]에게 즉위하게 되면 정사에 부지런히 힘써서 선왕들의 대업을 길이 이어 나갈 것을 촉구하였다. 또, 임금을 세우는 것은 임금을 위한 것이 아니라 백성들을 기르기 위함이며, 민심을 잃으면 임금이 될 수 없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정조에게 師傅보다 백성을 더 두려워해야 한다고 하였다.
회강을 마친 후 영조는 회강에 참여한 강관들에게 음식을 하사하여 세손 교육에 힘쓴 노고를 치하하였다. 영조는 할아버지와 손자가 회강한 것은 조선 300년 역사에서 처음 있는 경사라고 평가하면서 회강 내용을 정리한 기록물을 제작하도록 지시하였다. 본서에는 회강 내용 정리를 이정보에게 지시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 반면, 『영조실록』과 『승정원일기』에서는 史官·注書와 강관들이 함께 내용을 검토하여 정리하도록 했다고 하였다. 또, 『영조실록』에는 기록물을 2건 만들어서 하나는 大內로 들이고 다른 하나는 세손 교육을 담당한 講書院에 걸어 두도록 지시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반면, 『승정원일기』에는 회강 내용을 써서 강서원에 걸어 두고 印本 3건을 만들어 대내와 東宮·世孫宮에 각각 1건씩 올리도록 했다고 기록되어 있어서, 『영조실록』의 기사와 차이를 보인다.
특성 및 가치
영조 대 세손 교육의 구체적인 사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조선 후기 왕실 교육 연구에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또, 영조정조가 국왕의 책무에 대해 회강한 내용을 통해 두 국왕의 정치 사상의 일면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갖는 자료이다.
집필자
강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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