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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경효뎐묘현례홀긔

자료UCI : G002+KSMC+KSM-WO.0000.0000-20170406.B02416402_1-DES.057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장례원(掌禮院) 편(編)
작성시기    :
1906 / 광무 10년
형태사항    :
크기: 28.4×9.4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첩장(帖裝) / 수량: 1첩(帖) / 인장정보: 藏書閣印
청구기호    :
K2-2415
M/F번호    :
MF35-1345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1906년(광무 10) 황태자가 嘉禮를 거행한 뒤에 황태자비가 景孝殿에 廟見禮를 올릴 때의 의식을 기록한 笏記이다.
서지사항
붉은색 비단으로 장정되어 있다. 표지 서명은 제첨에 필사되어 있다. 書背 부분은 비단으로 장정되어 있다. 본문 첫 장에는 ‘藏書閣印’이 날인되어 있다. 주사란으로 한 면에 4행씩 정서되어 있으며, 각 행마다 서미에는 붉은색 종이로 작성된 첨지가 붙어 있다. 총 3면에 필사되어 있는데, 제2면 본문 전체에 흰색 종이를 붙여 글을 지운 흔적이 있다.
체제 및 내용
본서는 한글로 작성되었는데, 이는 의식을 돕는 尙宮을 비롯한 女官들을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이때 묘현례를 올린 황태자비는 尹澤榮(1866~1935)의 딸로, 훗날의 純貞孝皇后이다. 조선시대 국왕과 왕비의 가례는 이른바 納妃儀로 체계화되었으며, 육례 전에는 擇日, 육례 후에는 朝見과 백관이나 내·외명부의 朝會 등이 이루어졌다. 이런 가운데 왕비가 종묘에 알현하는 묘현례가 논란되다가 1696년(숙종 22) 세자 가례 때 왕비의 묘현례가 처음 시행된 이후 『國朝續五禮儀』에 명문화되었다. 이후 묘현례의 대상에 思悼世子의 사당인 景慕宮경효전 등이 포함되었다. 경효전高宗 妃인 明成皇后의 魂殿이다.
황태자비의 의식과 관련해서는 가례를 치른 뒤 4일 후에 종묘에 묘현례를 거행하도록 결정되었고, 같은 날 경효전을 비롯해 璿源殿에도 묘현례를 하도록 결정되었다. 본서는 이때 사용하기 위한 의주로 작성된 것으로 보이며, 황제와 황태자가 경효전에 나아가 展拜하고, 황태자비가 守閨 등의 도움을 받아 묘현례를 거행할 때의 복식과 절차 등을 규정하였다.
특성 및 가치
본서는 대한제국 시기 황실 가례의 진행과 관련된 모습을 전해주는 자료이다. 특히 구체적인 실무를 주관하는 여관들을 위한 자료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장서각에는 본서와 같은 내용의 『경효뎐행례홀긔』(K2-2421)가 소장되어 있어 참고가 된다. 한편 장서각에 소장된 사도세자의 사당인 경모궁에 묘현례를 행할 때의 의주인 『경모궁묘현례의주』(K2-2409)와 비교해 보면 절차 등의 모습을 추적할 수 있다.
참고문헌
심승구, 「조선시대 왕실혼례의 추이와 특성-숙종·인현왕후 嘉禮를 중심으로-」, 『조선시대사학보』 41, 조선시대사학회, 2007.
집필자
이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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