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입력기

자료열람

고서

경우궁향수건기(景祐宮享需件記)

자료UCI : G002+KSMC+KSM-WO.0000.0000-20170406.B02416402_1-DES.055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편자미상(編者未詳)
작성시기    :
1870 / 고종 7년
형태사항    :
크기: 34.4×25.9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청구기호    :
K2-2413
M/F번호    :
MF35-1345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1870년(고종 7)景祐宮의 각종 제사에 소요되는 물품의 수량을 정리한 자료이다.
서지사항
만자문 황색 표지로 장정되어 있다. 표지 서명은 ‘享需件記’이며, 편목 표시 부분에 ‘景祐宮 庚午’가 기록되어 있다. 공격지가 있으며, 한 면에 9행씩 한글로 작성되었다.
체제 및 내용
본서는 한글로 되어 있으며, 표제 부기의 ‘庚午’라는 기록을 통해 1870년(고종 7)에 작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즉 경우궁이 세워진 1824년(순조 24) 이후 시기의 庚午年1870년이다. 경우궁正祖의 후궁이며 純祖의 私親인 綏嬪 朴氏의 사당으로, 유빈 박씨의 喪期가 끝난 뒤인 1824년에 別廟를 조성한 뒤에 경우궁이라 하였다. 경우궁은 당초 한성부 북부 觀光坊 桂洞에 세워졌다가 1886년(고종 23)順化坊 仁王洞으로 이건되었다. 1870년(고종 7) 1월에는 宣祖의 후궁인 仁嬪 金氏肅宗의 후궁인 寧嬪 金氏, 정조의 후궁인 和嬪 尹氏의 사당을 경우궁으로 옮겼고, 1908년(융희 2) 1월 「享祀釐定」에 따라 경우궁을 포함 儲慶宮, 大嬪宮, 延祜宮, 宣禧宮 등을 모두 毓祥宮에 合祀하도록 개정되었다.
본서는 각각의 제사에 따라 소요되는 물품과 수량, 제기의 높이 등을 기록하였다. 규정된 제사는 正朝를 비롯해 상원, 탄일, 기신, 상식, 동지, 한식, 단오, 추석, 삭망 등이다. 정조는 모두 27그릇, 상원은 24그릇, 탄일은 30그릇, 기신은 37그릇, 상식은 10그릇, 동지는 20그릇, 한식과 단오, 추석, 삭망은 모두 4그릇으로 규정되었다. 제기의 높이는 정조와 상원은 8寸, 탄일은 9촌, 기신은 1尺, 동지는 8촌으로 규정되었고, 다른 제사는 별도의 규정이 없다.
특성 및 가치
한글로 기록된 것으로 보아 제사를 주관하는 女官들을 위해 작성된 것으로 보인다. 장서각에는 경우궁의 제사와 관련되어 본서 이외에도 1897년(고종 4)에 작성된 『경우궁뎡유신조』(K2-2412), 1867년(고종 4)에 작성된 『享需件記』(K2-2500), 작성 연대를 알 수 없는 『경우궁제향기』(왕실고문서1751) 등이 소장되어 있다. 이들 자료의 시기적 분석을 통해서 제물 및 제기의 변화를 알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왕실 제례에서 차지하는 경우궁의 위상 등을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참고문헌
高宗實錄
純祖實錄
집필자
이근호

PDF서비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