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입력기

자료열람

고서

경모궁묘현례의주

자료UCI : G002+KSMC+KSM-WO.0000.0000-20170406.B02416402_1-DES.051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편자미상(編者未詳)
작성시기    :
조선(朝鮮) 후기(後期)
형태사항    :
크기: 23.4×7.3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첩(帖) /
청구기호    :
K2-2409
M/F번호    :
MF35-1345
기록시기    :
朝鮮後期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조선 후기 국왕과 왕비가 嘉禮를 행한 뒤에 景慕宮에 廟見禮를 올릴 때의 의식을 기록한 儀註이다.
서지사항
표지 서명은 제첨에 필사되어 있다. 권수제는 ‘예경모궁묘현의’이다. 절첩본으로 5면만 필사되어 있다. 상하단변은 朱筆로 필사되어 있으며, 계선은 없다. 5행으로 정서되어 있는데, 각 행마다 서미에는 분홍색 종이로 작성된 첨지가 붙어 있다.
체제 및 내용
본서는 한글로 작성되었는데, 이는 의식을 돕는 尙宮을 비롯한 女官들을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예경모궁묘현의」와 「예망묘루묘현의」로 구성되었다. 廟見 의례는 국왕과 왕비의 가례 뒤에 종묘를 알현하는 데서 시작되었다. 조선시대 국왕과 왕비의 가례는 이른바 納妃儀로 체계화되었으며, 납비의는 六禮라 하여 納采, 納徵, 告期, 冊妃, 命使奉迎(親迎), 同牢로 이루어졌다. 이 밖에 육례 전에는 擇日, 육례 후에는 朝見과 백관이나 내·외명부의 朝會 등이 이루어졌다.
이런 가운데 종묘에 알현하는 묘현례가 논란되다가 1696년(숙종 22) 세자 가례 때 왕비의 묘현례가 처음 시행된 이후 『國朝續五禮儀』에 명문화되었다. 그리고 純祖 대 이후에는 경모궁에 나아가 展謁하거나 묘현례를 행하는 것이 추가되었다. 경모궁思悼世子의 사당으로, 처음에는 垂恩廟라 불리다가 1776년(정조 즉위년) 3월 이후 경모궁으로 개칭되었다. 경모궁에는 사도세자와 함께 1815년(순조 15) 12월 사망한 惠慶宮 洪氏의 신위도 안치되었다.
한편 1791년(정조 15)정조의 御眞 1本을 경모궁 望廟樓에 봉안한 것을 시작으로 이후 국왕의 어진도 봉안하였다. 그러나 대한제국이 선포된 뒤에 사도세자莊祖로, 혜경궁 홍씨獻敬王后로 追崇되어 종묘에 祔廟되면서 그 기능을 잃게 되었다. 이에 따라 경모궁의 묘현례 역시 중단되었다. 따라서 본서는 이 시기 이전에 작성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내용은 왕비의 乘輿를 비롯해 알현 및 환궁 절차를 규정하였고 아울러 의식을 주관하는 尙儀의 역할 등도 함께 수록하였다.
특성 및 가치
본서는 조선 후기 가례 운영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 특히 구체적인 실무를 주관하는 여관들을 위한 자료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장서각에는 대한제국 당시 황태자의 가례 때 明成皇后의 魂殿인 景孝殿에 황태자비가 묘현례를 행할 때의 의주인 『경효뎐묘현례홀긔』(K2-2415)가 소장되어 있어 참고가 된다.
참고문헌
심승구, 「조선시대 왕실혼례의 추이와 특성-숙종·인현왕후 嘉禮를 중심으로-」, 『조선시대사학보』 41, 조선시대사학회, 2007.
집필자
이근호

PDF서비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