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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서등록(社稷署謄錄)

자료UCI : G002+KSMC+KSM-WO.0000.0000-20170406.B02416402_1-DES.053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사직서(社稷署) 편(編)
작성시기    :
[1759] / 영조 35년
형태사항    :
크기: 35.5×28.9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35.8×22.7㎝ / 인장정보: 社稷署印
청구기호    :
K2-2152
M/F번호    :
MF35-609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1720~1759년(숙종 46~영조 35)社稷署에서 社稷壇의 관리와 보수 및 社稷祭의 실행 등과 관련된 일을 시기별로 기록한 謄錄이다.
서지사항
표지 서명이 ‘社稷署謄錄’이다. 표지 장황은 改裝한 것이다. 標題의 우측 상단에 ‘自庚子(1720) 至己卯(1759)’라 적혀 있다. 또 하단에는 서근제 역할을 하는 띠지가 붙어 있다. 본문의 판식은 판심이 없는 四周單邊에 上內向二葉花紋魚尾의 印札空冊紙에 11行 30~35字로 쓴 필사본이다. 본문의 종이는 일반적인 楮紙를 사용하였다. 인장은 본문의 안쪽 이음새면에 1과와 면마다 1과나 2과씩 ‘社稷署印’을 날인하였다. 책 수는 권차의 권6만 있는 것으로, 1책 43장이다.
체제 및 내용
본서의 개장 표지에는 ‘社稷署謄錄 六’, 원래 표지에는 ‘社稷署謄錄 中’이라는 표제와 ‘自庚子 至己卯’라는 목록이 적혀 있다. 본문의 맨 앞과 뒤에 낙장이 있는 듯하며, 남아 있는 실제 부분도 첫 장과 마지막 장은 훼손이 심하다. 또한 1745년(을축, 영조 21) 기사 다음에 1753년(계유) 5월 25일 기우제에 親臨할 때의 ‘帳前圖’ 下 1面이 있고, 그다음엔 1747년(정묘) 기사가 이어지는데, 을축년 이전 기사는 半葉 11행 23~27자이고, 정묘년 이후 기사는 반엽 14행 32~34자로 되어 있다.
본서의 欄外 위쪽에 연도를 나타내는 干支가 적혀 있고, 간간이 해당 기사의 요약어가 있다. 예를 들면 ‘祈晴’, ‘祈雪’, ‘國恤膰肉前例’(1730년 7월 15일), ‘亞獻官 奠爵時陞自正路 奠爵後降自西陛[아헌관이 술잔을 올릴 때는 正路로 올라오고, 술잔을 올린 뒤에는 서쪽 계단으로 내려감]’(1733년 1월 9일), ‘因禮曹草記 安香廳入接[예조의 초기로 인하여 안향청에 거처함]’(1734년 1월), ‘雷震之怪’(1743년 10월 11일), ‘墻垣 慰安 定界[무너진 담장에 대해 위안제를 지내고 경계를 정함]’(1745년 5월), ‘書員差出’(1747년 8월 2일), ‘直爲向方儀節[곧장 그 방향을 향해 예의를 표함]’(1753년 5월 15일)으로서 그 기사의 핵심을 드러내고 있다.
일반적인 다른 사직서 등록에 비해 특이한 기사는 1744년(영조 20) 9월 8일에 영조耆社에 들어가므로 告祭를 행하였다는 내용인데, 기사 분량이 매우 짧고[行聖上入耆社敎是告祭 獻官副司直尹彙貞] 직전 해 마지막 기사인 10월 11일 내용 다음에 바로 이어 적지 않고 행을 비운 채 끝줄에 다른 필체로 기록되어 있으며, 그다음 張의 내용이 1744년 8월 8일자 기사인 점 등을 미루어 보아 이 등록 자체가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草稿本임을 알 수 있다.
본서는 사직서의 등록 관련 일괄 문서 중의 하나로서 그 내력 및 사직서 등록의 일반 내용에 대해서는 『謄錄』(K2-2149) 참조.
특성 및 가치
조선 후기 사직단의 실제 祭享 사례 및 관리·운영 상황을 자세히 알려 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藏書閣所藏謄錄解題』,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2.
李迎春, 「『社稷署謄錄』 解題」, 『社稷署謄錄』 1, 한국학중앙연구원, 2009.
李煜, 「『社稷署謄錄』 解題」, 『社稷署謄錄』 2, 한국학중앙연구원, 2009.
李弼龍, 「本院 所藏 稀貴資料 解題」, 『정신문화연구』 34,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88.
집필자
백영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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