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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직서등록(社稷署謄錄)

자료UCI : G002+KSMC+KSM-WO.0000.0000-20170406.B02416402_1-DES.050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사직서(社稷署) 편(編)
작성시기    :
1849 / 헌종 15년
형태사항    :
크기: 40.8×25.7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인장정보: 社稷署印
청구기호    :
K2-2149
M/F번호    :
MF35-2279
기록시기    :
1849年(憲宗 15) 以後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1835~1849년(헌종 1~15)社稷署에서 社稷壇의 관리와 보수 및 社稷祭의 실행 등과 관련된 일을 시기별로 기록한 謄錄이다.
서지사항
표지 서명이 ‘謄錄’이다. 사직서 등록인 만큼 서명을 ‘[社稷署]謄錄’으로 해야 할 것이다. 표지 장황은 改裝한 것이다. 본문의 판식은 괘선이 없는 백지에 9~12行 字數不定으로 쓴 필사본이다. 본문의 종이는 일반적인 楮紙를 사용하였다. 인장은 본문의 안쪽 이음새면에 1과, 매 면마다 1과씩 ‘社稷署印’을 날인하였다. 책 수는 책차가 권6으로, 1책 53장이다. 책의 형태로 본다면 K2-2149(권6), K2-2150(권7)을 같은 본으로 봐야 할 것이다.
체제 및 내용
藏書閣에는 사직서의 등록과 관련된 도서로서, 표제가 ‘社稷署謄錄’인 도서 6종, ‘謄錄’ 2종 및 ‘社稷署報草錄’ 1종이 소장되어 있는데, 모두 사직서에서 社稷壇의 관리와 운영 및 각종 祭享에 대해 편년체 형식으로 기록한 일괄 도서이다. 李迎春「『社稷署謄錄』 解題」(2009)에 따르면 ‘사직서등록’은 기록 시기로 보아 총 10책이 있어야 하는데, 현재 남아 있는 것이 8책뿐이라 하고, 李煜의 『藏書閣所藏謄錄解題』(2002)에서는 그 다섯 번째 결본을 ‘社稷署報草錄’으로 보고 있다. 일람표를 재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순서 表題(內紙) 수록 시기(기간) 기사 수
(연평균) 청구기호
(張數) 板式 1 社稷署謄錄 一 1661.1~1718.윤11
(57년간) 200
(3.5건) K2-2151
(54장) 四周, 有界 2 社稷署謄錄 六
(內:社稷署謄錄 中) 1720.3~1759.12
(39년간) 180
(5건) K2-2152
(43장) 四周, 有界 3 〈결본〉 1760~1786       4 社稷署謄錄 四
(內:社稷署謄錄 卷之四) 1787.12~1819.6
(32년간) 530
(16.6건) K2-2153
(82장) 四周, 有界 5 社稷署報草錄 1820.1~1835.8
(16년간) 232
(14.5건) K2-4774
(45장) 無郭, 無界 6 謄錄
(內:謄錄 六) 1835.12~1849.9
(14년간) 315
(22.5건) K2-2149
(53장) 無郭, 無界 7 謄錄 七 1849.10~1861.5
(12년간) 380
(31.7건) K2-2150
(89장) 無郭, 無界 8 社稷署謄錄 三 1861.6~1878.12
(17년간) 445
(26.2건) K2-2154
(90장) 無郭, 無界 9 社稷署謄錄 五
(內:社稷署謄錄 九) 1879.1~1886.5
(7년간) 183
(26.1건) K2-2155
(36장) 無郭, 無界 10 社稷署謄錄 二 1886.6~1892.2
(6년간) 200
(33.3건) K2-2156
(35장) 無郭, 無界
본서의 원래 표지에 ‘謄錄 六’이라는 표제와 ‘乙未 丙申……己酉’까지 목록이 적혀 있다. 단 본문의 마지막 張에는 丁亥년 8월 秋享大祭와 10월 陳賀告由祭 기사가 실려 있다. 이 정해년은 기록된 祭官들을 살펴볼 때 1887년(고종 24)이 분명하지만, ‘丁亥’가 본문 위에 橫書되어 있지 않고 해당 월일에 포함된 채 字數를 내려 쓰지 않은 점 등으로 보아 뒷날 加筆된 것으로 보인다.
본서의 체제를 살펴보면, 해당 연도의 간지가 본문 시작 위쪽에 橫書로 쓰여 있고, 그다음 월일이 작은 제목처럼 적혀 있으며, 간간이 그 아래 ‘禮曹報草’, ‘稟目’, ‘神室移安兼告’ 등 설명하는 말이 작은 크기로 부기되어 있기도 하다. 또한 報牒 문건에는 주로 ‘爲只爲’로 종결되는 이두가 많이 쓰이고 있다.
첫 기사는 “乙未 十二月初五日 臘享大祭를 행하다.”로 시작하여 “初獻官은 행 상호군 徐俊輔, 亞獻官은 형조 판서 金蘭淳, 終獻官은 형조 참판 李穆淵, 薦俎官은 형조 참의 尹滋畊, 壇司令은 白宗杰이다.”로 종결되는데, 각 祭官의 姓名 중 이름은 작은 크기로 적혀 있다. 사직서에서 주관하는 제향의 종류로는 臘享大祭, 祈穀大祭, 春享大祭, 秋享大祭 및 祈雪祭, 祈雪報謝祭, 上尊號告由祭, 嘉禮告由祭, 慰安祭 등이 있는데, 祭官으로 初·亞·終 獻官뿐만 아니라 반드시 薦俎官과 壇司令[社稷署 令]을 기록해 두고 있다.
또한 각종 牒報 문건으로서, 大祥 후 禫祀 전의 상황에서 飮福禮 등을 예조에 품의하는 일, 도제조의 身病으로 褒貶을 마감할 수 없다는 일, 낙엽이 떨어질 때 포교와 포졸을 규정대로 보내어 이를 땔감으로 훔쳐 가는 도둑을 엿보아 체포하도록 할 것 같은 다양한 사례가 기록되어 있다. 1837년(헌종 3) 2월 20일의 경우 ‘御齋室, 典祀廳, 宰牲廳, 동서 祭官房의 大門과 각종 庫舍의 곳곳에 비가 새며, 北神門 문짝이 파손되었기에 牒報하니 속히 수리해 주도록 호조에 요청한 건’에 대해서는 “5월 23일부터 시작하여 典祀廳 동쪽, 祭官房 遮帳을 수리하고 大門의 椽木을 수리하였다.”는 처리 결과가 작은 크기로 부기되어 있다.
그리고 사직서에서 주관한 祭享官 명단이나 牒報 문건이 아니라도, 사직서와 직접 관계있는 왕의 傳敎 등도 해당 날짜에 따라 기록되어 있다. 예컨대, 1842년(헌종 8) 8월 3일의 경우 “사직단에 親祭를 지낼 때 前導 역할을 한 守僕 金象炫에게 帖加를 만들어 주라.”는 전교와 “사직단의 外墻이 土墻이니 石墻으로 견고하게 개축하라.”는 전교가 실려 있는데, 특히 두 번째 하교에 대해서는 “同月 16日에 工役을 시작하여 9月 4日에 공역을 마쳤다.”는 내용이 작은 크기로 부기되어 있다.
특성 및 가치
조선 후기 사직단의 실제 祭享 사례 및 관리·운영 상황을 자세히 알려 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藏書閣所藏謄錄解題』, 한국정신문화연구원, 2002.
李迎春, 「『社稷署謄錄』 解題」, 『社稷署謄錄』 1, 한국학중앙연구원, 2009.
李煜, 「『社稷署謄錄』 解題」, 『社稷署謄錄』 2, 한국학중앙연구원, 2009.
李弼龍, 「本院 所藏 稀貴資料 解題」, 『정신문화연구』 34, 1988.
집필자
백영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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