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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공묵합입시시면유(御製恭默閤入侍時面諭)

자료UCI : G002+KSMC+KSM-WO.0000.0000-20170406.B02416402_1-DES.019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편자미상(編者未詳)
작성시기    :
1788 / 정조 12년
형태사항    :
크기: 34.8×19.9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첩장(帖裝) / 수량: 1첩(帖) /
청구기호    :
K2-1837
M/F번호    :
MF35-2181
기록시기    :
1788年(正祖 12) 以後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1764년(영조 40) 9월에 영조사도세자의 일에 관해 하교한 내용과 1788년(정조 12) 12월에 정조사도세자의 생모 暎嬪 李氏의 墓號를 정할 때의 望單子 내용을 필사해 놓은 책이다.
서지사항
表紙書名은 ‘御製恭默閤入侍時面諭’이며 표지에 필사되어 있다. 3折 6面의 절첩장이다. 제2면부터 본문이 시작되며 界線 없이 6행으로 필사되어 있다. 별지에 작성된 望單子가 첨부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본서의 정확한 필사 시기는 확인되지 않지만, 정조영빈 이씨의 묘호를 확정한 것이 1788년 12월이므로 본서는 그 이후에 필사된 것임을 알 수 있다.
본서는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두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 번째는 1764년(영조 40) 9월 26일에 영조恭默閤에서 대신들과 세손[정조]에게 사도세자의 일에 관해 下諭한 내용이다. 여기에서 영조1762년(壬午年) 사도세자의 죽음은 宗社와 大義를 위해 불가피한 일이었음을 천명하였다. 특히 영조는 壬午禍變 당시 영빈 이씨가 모자 간의 정보다 나라를 위한 의리를 밝힘으로써 사직이 보존될 수 있었다고 강조하면서, 세손에게 조모의 의리를 마음에 깊이 새기도록 할 것을 당부하였다. 『승정원일기』에 따르면, 영조는 이 하교 내용을 대신들에게 교정하도록 한 다음 승정원에서 2건을 正書하여 內入하고, 또 『승정원일기』에도 기록하도록 명하였다.
두 번째 부분은 정조영빈 이씨의 墓號를 확정했을 때의 망단자 내용을 필사한 것이다. 1788년(정조 12) 12월 26일 錦城尉 朴明源이 상소를 올려 영빈 이씨의 宮號와 墓號를 ‘義烈’ 하나로 통칭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점을 지적하였고, 정조가 이를 수용하여 새 묘호를 정하게 되었다. 망단자의 내용에 따르면 당시 영빈 이씨의 묘호 후보로 ‘宣禧’, ‘顯禧’, ‘彰禧’ 등 세 가지가 올라왔으며, 정조가 이 중에서 ‘宣禧’를 낙점하였다.
특성 및 가치
壬午禍變에 대한 영조의 인식과 당시 영빈 이씨의 입장, 그리고 영빈 이씨의 묘호 확정 과정 등을 파악하는 데 참고가 되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承政院日記
正祖實錄
집필자
강문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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