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입력기

자료열람

고서

책명록(策名錄)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홍기섭(洪起燮) 찬(撰)
작성시기    :
1831 / 순조 31년
형태사항    :
크기: 30.2×21.1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0.0×15.2cm / 인장정보: 李王家圖書之章
청구기호    :
K2-904
M/F번호    :
MF35-1670
기록시기    :
1831年(純祖 31) 以後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홍기섭(1776~1831)이 예조판서로 재직하던 1830년(순조 30) 1월부터 사망하던 해인 1831년 8월 16일까지 조정 내에서 행했던 관직 생활을 기록한 책이다.
서지사항
上下內向二葉花紋魚尾가 있는 목판 인찰지에 정서한 책이다. 版上口에 작성 당시의 干支인 ‘庚寅’이 필사되어 있다. 내용 중 빠진 글자는 그 자리에 朱色點을 찍은 후 添筆, 혹은 頭註 등에 첨필한 내용과 함께 글자의 위치를 적어 놓거나 공간과 誤字를 삭제한 校訂本이다. 두주 윗글자가 절단되어 있다. 장서각 소장 『科宦錄』(K2-893)과 필사 형태, 교정 방식과 교정 서체 등이 같다.
체제 및 내용
‘책명’은 관원이 된다는 뜻이다. 찬자 홍기섭의 본관은 남양이고 자는 喜哉이다. 1802년(순조 2) 문과에 급제한 뒤 홍문관 수찬을 거쳐 성균관 대사성사간원 대사간승지, 예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1830년(순조 30) 대리청정을 하던 효명세자가 사망하자 언관의 탄핵을 받기도 하였다. 본서는 1830년 1월 1일부터 홍기섭이 사망하여 조정에서 致賻하던 1831년 8월 16일까지를 다루고 있다.
본서가 다루고 있는 시기에 홍기섭예조판서로 재직하면서 약방제조를 겸하던 시기였다. 그리하여 각종 의례에 참여하는 한편 1830년 대리청정하던 효명세자가 사망한 책임을 묻는 언관 등의 탄핵을 받았다. 본서는 당시 홍기섭을 탄핵한 지평 吳致淳의 상소를 시작으로 계속되는 흥교 홍원모 등의 연명 상소, 대사헌 김양순을 중심으로 한 연명 상소 등을 전부 수록하였다. 결국 이들의 공격으로 홍기섭은 관직을 그만두고 낙향하였으나 공격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京外 유생 李敦五 등의 상소와 언관들의 상소가 계속되었음을 기록하였다. 홍기섭은 결국 포도청에까지 가서 조사를 받게 되었다. 그리고 다음 해 6월 2일에 그 죄가 모두 탕척되어 서용하라는 명령이 내려졌으며 대호군이 제수되었으나, 그로부터 얼마 안 되어 8월 14일에 사망하였음을 기록하였다.
이어 「과후만록」이 부록으로 수록되었다. 「과후만록」은 홍기섭이 과거에 급제하는 1802년 11월부터 과거 풍습이라든지 관직 생활 중 견문한 내용을 기록하였다. 여기에는 과거 급제 후 遊街를 하는 3일 안에 선배를 찾아가는 古風의 풍습을 비롯해 성균관에서의 생활, 시관으로서 경험한 것이나 부연사행 때의 견문 등을 기록하였다.
특성 및 가치
본서에 수록된 「과후만록」은 19세기 전반기 관료 사회의 풍습을 살피는 데 참고가 되는 자료이다.
집필자
이근호

PDF서비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