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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기문잡록(記文雜錄)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저자미상(著者未詳)
작성시기    :
간년미상(刊年未詳)
형태사항    :
크기: 34.4×22.2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불분권(不分卷) 2책(冊) / 판식: 반곽(半郭) 27.6×17.8cm /
청구기호    :
K2-894
M/F번호    :
MF35-651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밀양박씨 世系 및 그 宗社 관련 文書와 碑銘 등을 기록한 책이다.
서지사항
표지 서명은 ‘記文雜錄’이다. 제목은 표지 서명을 따랐다. 卷頭에 目錄이 있다.
체제 및 내용
본서 上卷의 처음에 新羅始祖事實을 실었으며, 다음에 十二中祖와 代死功臣繼天府院君朴公誌石記, 대제학 趙觀彬이 찬한 列聖朝追崇, 朴鉉의 묘지인 紏正公墓誌, 列聖朝受敎가 수록됐다. 이어서 密陽朴氏譜凡例가 실려 있는데, 여기에 ‘無子女相渾之獘’라는 조목이 있어 주목할 만하다. 다음은 諡狀으로 「文景公諡狀」과 「文莊公諡狀」이 있으며, 退憂公 朴承宗(1562~1623)의 행장이 자세히 실려 있다. 조선 중기 광해군 때 문신이었던 박승종좌의정영의정을 역임하고 密陽府院君에 봉해졌으며, 仁穆大妃를 지키려 廢母論을 반대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인조반정때 아들과 함께 목을 매 자결한 비운의 인물이기도 하다. 관작이 삭탈되고 가산이 적몰되었지만, 훗날 伸寃되었다.
「퇴우공행장」 이후로는 박승종 관련 글들이 몇 편 수록되어 있다. 「大司諫洪鎬啓辭」나 「避嫌啓辭」는 박승종이 탐학한 죄인으로 몰려 죽음을 당했으나 其實 조금도 사사로운 뜻이 없었다는 辨誣에 관한 계사이다. 이외에도 「應旨疏一節」, 「副提學李埈疏」, 「吏曹叅議牛山竹山安邦俊疏」가 실려 있다. 「東平尉日記」 역시 박승종과 관련한 기록이다. 1612년 李爾瞻의 사주로 인목대비에 대한 폐모론이 일었을 때 박승종이 극력 반대했던 일을 기재했다. 「先正臣相公宋時烈疏」와 「吏曹回啓金錫胄辛酉」, 「東陽尉日記」, 「幼學李.疏請敦諭」, 「辛酉十二月白大珩事」와 좌의정 韓孝純의 啓辭 「左議政啓辭」가 실려 있다. 유난히 박승종과 관련한 기록이 많은데 「退憂公諡狀」과 「復官爵」 역시 그러하다. 특히 「復官爵」은 박승종 부자가 자결한 후 삭탈관직 한 것에 대해 훗날 伸寃한 내용이다.
卷末에는 밀양박씨 1세부터 15세까지의 譜圖를 기록한 「密陽朴氏本譜圖」와 밀양박씨 가문의 王后誕生世系를 정리한 「密陽朴氏沙麓圖」가 있다. 정리된 왕후들은 王后誕生世系, 仁宗仁聖王后, 孝宗仁宣王后, 顯宗明聖王后, 肅宗仁敬王后, 仁顯王后, 仁元王后, 景宗端懿王后이다. 또한 「密陽朴氏科錄」과 南獻敎가 작성한 「密陽朴氏家乘序」와 密昌君八世孫 凖三이 작성한 「密陽朴氏家乘歷年記」가 차례로 실려 있다.
본서 하권에는 주로 記文과 碑文이 실려 있다. 竹陰 趙希逸의 지은 「退憂亭記」를 시작으로 하여 유홍훈의 「題議政公退憂亭」, 楊道寅의 「題議政公退憂堂」 등 여러 문인들이 퇴우정에 제한 글들을 모아 수록했다. 이어서 「金宣川祭文」, 「忠愍祠記」, 박승종의 善政碑文인 「湖南巡察使善政碑文」과 朴自興의 선정비문인 「兼巡察使朴公善政碑全羅道」 등이 실려 있다. 「挹白堂記」는 六逸會帖이라 하여 朴自凝(1589~1645)을 비롯한 六逸會 詩會로 추정되는 인물들의 題가 실려 있다. 읍백당은 조선 중기 박자응이 지은 집의 堂號이다. 인목대비가 거처한 西宮인 西方을 향하는 마음을 ‘읍백당’으로 지어 표현한 것이다. 이외에도 「密陽朴氏文集序」와 「陰記」, 墓表, 碑銘, 墓碣銘이 주를 이루며 권말에는 「副提學公遺書」가 실려 있다.
특성 및 가치
밀양박씨의 世系와 관련한 다양한 文書들을 정리하였는데 박승종 父子의 伸寃과 관련한 문서들이 주를 이룬다. 광해군인조 대의 정치사를 파악할 수 있는 사료적 가치가 있다. 「挹白堂記」는 당시 정치적인 모임이 詩會로 연결되는 일단을 보여준다.
집필자
이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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