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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감류편(坎流編)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박태보(朴泰輔) 찬(撰)
작성시기    :
1686 / 숙종 12년
형태사항    :
크기: 25.5×17.5cm / 판본: 수고본(手稿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인장정보: 潘南朴氏泰輔士元甲午以降乙卯生員丁巳 壯元壬戌賜暇定齋散人之章, 藏書閣圖書印
청구기호    :
K2-889
M/F번호    :
MF35-331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朴泰輔(1654~1689)가 1680년(숙종 6) 11월 22일부터 1685년 4월 11일까지 작성한 자필 일기이다.
서지사항
庚申(1680) 11월부터 乙丑(1685) 4월까지의 사실이 수록되어 있고, 박태보의 藏書印이 날인되어 있으며, 권말에 본문과 筆體는 동일하나 먹색이 다른 “自壬戌二月 …… 至丙寅十月 …… ”이 기재되어 있다. 따라서 본문 하한년도는 1685년(숙종 11)이며 권말 기록은 1686년(숙종 12)에 添筆한 것으로 보인다. 본문은 行書體로 쓰여 있으며 誤字 위에 加筆한 흔적이 있다. 박태보는 본관이 潘南이고, 字는 士元, 號는 定齋이며, 박세당의 아들이다.
체제 및 내용
‘坎流’는 『漢書』의 “물결을 타고 흘러가고 구덩이를 만나 멈춘다.(乘流而逝, 得坎而止)”는 구절에서 인용한 것으로 박태보 자신의 처세관을 담고 있다. 박태보의 문집 『定齋集』의 「別集」 권4~5에는 1686~1687년에 쓰여진 일기까지 추가하여 실려 있다.
본문은 1680년 11월 22일 부수찬을 제수받은 일부터 시작된다. 이하 공신 추록을 둘러싼 논쟁, 박태보가 『管子』를 인용하여 상벌을 공정히 할 것을 청한 일 등이 기록되었다. 1681년1682년의 기록은 오시수의 처분을 둘러싼 논쟁, 주강에서 숙종에게 절용과 학문을 권하는 박태보임영, 이단하가 찬한 선왕(현종)의 행장에 대한 박태보의 비판과 조정의 논쟁, 논쟁으로 파직된 박태보의 등용을 청하는 동료들의 상소 등이다. 1683년1685년의 기록은 송시열을 배척하고 윤증을 중심으로 결집하는 박태유, 박태보, 조지겸, 오도일, 한태동 등을 黨與라고 비난하는 박익무 등의 상소 세 편이다. 말미에 1682년부터 1686년까지 정언, 지평 등을 제수받았던 관력을 짧게 기록하였다.
특성 및 가치
1680년(숙종 6) 이후 서인이 정계를 주도할 때 빚어진 논쟁과 1683년 이후 서인이 노론과 소론으로 분기할 때의 논쟁점, 또한 당시 소론의 주요 인물로 활약하였던 박태보의 정견을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집필자
이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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