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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교남공적(嶠南公蹟)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박제관(朴齊寬) 찬(撰)
작성시기    :
1871 / 고종 8년
형태사항    :
크기: 28.7×21.1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인장정보: 藏書閣印
청구기호    :
K2-697
M/F번호    :
MF35-428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1871년(고종 8) 3월 10일 경상도 寧海에서 李弼濟, 崔時亨, 姜時元 등이 일으킨 寧海作變의 관련자들을 체포하여 問招處罰한 전말을 기록한 자료이다.
서지사항
서명은 表紙書名에 근거하였다. 표지 서명은 제첨 없이 필사하였고, 서명의 아래에 ‘全’으로 표기하였다. 본문은 괘선이 없는 종이에 淨書하였고, 부분적으로 꺾쇠 표시가 나타나고, 종이를 오려 붙여 수정한 부분도 있다.
체제 및 내용
본 도서는 1871년(고종 8) 3월 10일에 발생한 영해작변에 대해 安東府使 朴齊寬(1834~?)이 寧海按覈使로 파견되어 사건을 처리하면서 체포와 문초를 거쳐 그 죄상을 경중에 따라 처벌한 査啓, 즉 결과 보고서이다. 박제관은 19세기 말의 전형적인 실무형 관료로 지방관을 두루 역임하였고, 여흥민씨 일파로 알려진 인물이다.
본문은 영해안핵사 박제관이 22일부터 작변 관련자 105명에 대해 행한 문초 기록과, 같은 해 7월 3일 議政府에서 안핵사의 처리를 추인하고 그 사실을 권말에 추록한 부분으로 구성된다. 기술 방식은 문답 형식으로 되어 있고, 작변 관련자 105명에 대한 初推부터 四推까지의 전체 내용과 안핵사의 처리도 수록되었으나 초추 전체와 更推 일부가 망실되어 있다. 문초 내용으로는 관련자 105명의 이름, 신분 혹은 직역, 거주지, 친인척 관계, 문초 일자, 査啓의 접수 처리 사실이 정리되어 있다. 특정 지역의 성씨가 작변에 적극 참여하였음도 확인할 수 있는데, 寧海權氏朴氏, 英陽김씨, 平海김씨 등이 그들이며, 가담자 대부분이 서로 친인척 관계라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특히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이 영해 지역의 舊鄕과 新鄕의 갈등이 표출되면서 東學과 밀접하게 결합되어 나타났다는 점이다. 아울러 사건 관련자 대다수가 東學敎人이었으며, 海月 崔時亨崔景五라는 이름으로 작변 초기부터 적극적으로 가담했음도 초기 동학운동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 시사적인 점이다.
한편 규장각에 소장된 『慶尙監營啓錄』(奎15100)은 1842~1891년(헌종 8~ 고종 28)慶尙監營에서 보내온 啓文을 備邊司에서 정리한 것으로 참고할 수 있다.
특성 및 가치
寧海作變에 관련된 동학 사료인 『崔先生文集道源記書』에 비견될 만한 관변 자료로 조선 후기 민중운동과 初期 東學과의 관계를 실증할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嶠南公蹟 解題」, 朴孟洙, 『韓國史學』 10, 韓國精神文化硏究院, 1989.
집필자
이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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