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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광노자사적(狂奴子事蹟)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편자미상(編者未詳)
작성시기    :
사년미상(寫年未詳)
형태사항    :
크기: 28.3×18.6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1.2×14.2cm / 인장정보: 舊宮, 帝室圖書之章, 李王家圖書之章
청구기호    :
K2-696
M/F번호    :
MF35-1879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1453년(단종 1)에 발발한 癸酉靖難에서 희생당한 鄭苯의 아들 狂奴子 鄭遠에 관련된 각종 자료들이 수합되어 1774년(영조 50) 이후 작성된 책이다.
서지사항
表紙書名, 書根題는 ‘狂奴子事蹟’이다. 표지 서명은 제첨 없이 필사하였고, 서명의 아래에 ‘全’으로 표기되어 있다. 본문은 흑색 필사 인찰공책지에 흑색, 청색, 주색 등으로 필사하였다.
체제 및 내용
본 도서는 序文, 目次, 跋文 없이 본문만 있어서 작성 배경이나 편찬자 등을 알 수 없다. 본문은 광노자 정원에 관련된 각종 자료들인데, 구체적으로는 墓誌, 靑圈字雖依俙疑不敢質者, 承政院日記 記錄, 墓誌跋, 狂奴子鄭公誌跋, 墓誌後跋, 鄭狂奴子傳, 題鄭忠莊三世事蹟後, 狂奴子墓誌跋 등이다. 墓誌는 광노자 정원의 墓誌인데 그의 아들 鄭變韶1496년(연산 2) 1월에 지은 것이다. 靑圈字雖依俙疑不敢質者는 광노자 정원의 墓誌가 영조 연간(1694~1776)에 출토되어 판독하기 어려운 글자가 없지 않지만 대의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내용으로, 黃仁煥1765년(영조 41) 11월 12일에 지은 글이다. 承政院日記 記錄은 1768년(영조 44) 12월 23일자 기록으로, 여기에는 영조가 癸酉靖難 때 희생당한 皇甫仁, 金宗瑞, 鄭苯을 伸寃하고 그들의 후손을 특채하고자 하던 중 鄭苯의 아들인 광노자 정원의 墓誌가 長興에서 우연히 발견되었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본문은 長興에서 우연히 발견된 광노자 정원의 墓誌에 관련된 각종 글들이다.
본 『狂奴子事蹟』이 작성된 직접적인 계기는 1746년(영조 22)황보인, 김종서, 정분이 伸寃된 사건이었다. 영조황보인, 김종서, 정분을 신원하면서 그들의 자손을 찾아 錄用하게 하였다. 그런데 황보인김종서의 후손은 금방 확인되어 錄用되었지만 정분의 후손은 오래도록 확인이 되지 않았다. 그러던 중 長興에서 鄭氏馬氏 사이에 소송 사건이 터졌는데, 소송 와중에 鄭氏의 무덤을 발굴하게 되었고, 거기에서 정분의 아들인 광노자 정원의 墓誌가 발견되었다. 그 墓誌에 의하면 광노자 정원정분이 화를 당한 후 이름을 光露로 개명하고 멀리 長興에 가서 숨어 살며 광노자라 자칭하였다. 슬하에 3남 2녀를 둔 광노자 정원은 세상을 떠날 때 가문 내력을 비밀로 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이에 따라 광노자 정원의 후손들은 자신들이 누구의 후손인지도 모른 채 영조 때까지 살게 되었던 것이다. 광노자 정원의 墓誌는 당시 영의정이던 홍봉한에게 전해졌고, 홍봉한은 이를 영조에게 보고하였다. 이 결과 정분의 후손들은 錄用되었고, 정분광노자 정원의 墓는 왕명에 의해 修葺되는 특전을 입게 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광노자 정원에 관련된 각종 자료들이 수합되어 본 『狂奴子事蹟』이 작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집필자
신명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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