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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고사업증이조판서겸성균제주선우공시장(故司業贈吏曹判書兼成均祭酒鮮于公諡狀)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남정철(南廷哲) 찬(撰)
작성시기    :
1909 / 융희 3년
형태사항    :
크기: 31.0×22.6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5.8×18.4cm / 인장정보: 藏書閣印
청구기호    :
K2-689
M/F번호    :
MF35-1878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조선 인조 때의 학자 鮮于浹(1588~1653)의 諡號를 청하기 위해 1909년(융희 3)南廷哲(1840~1916)이 작성한 諡狀이다.
서지사항
서명은 表紙書名에 근거하였다. 구 표지가 남아 있으며, 서명은 개장된 표지 서명과 같다. 본문은 주색 필사 인찰공책지에 淨書하였다. 권말에는 “西紀一九七一年三月 藏書閣再裝”이라는 개장 기록이 있다.
체제 및 내용
선우협조선 인조 때의 학자이며, 자는 仲潤, 호는 遯庵이다. 본관은 太原이고, 崇仁殿監 의 아들이다. 金台佐(1541~?)를 師事하고 李滉(1501~1570)을 私塾했으며, 張顯光(1554~1637)과 金集(1574~1656)을 찾아가 학문을 질문했다. 평생 벼슬하지 않고 학문에 전념하며 후진을 양성하여 관서 지방에 性理學을 전수하였다. 모친상을 치를 때 朱子家禮를 따랐으며, 김태좌의 상에는 心喪三年을 지냈다. 효종에게 상소를 올려 『大學』을 講磨하고 敬을 위주로 수양할 것 등을 진언하였다. 저술로 「心學至要」, 「易學圖說」, 「太極辨解」, 「大易理象」 등을 남겼고, 문집으로 『遯菴全書』가 있다. 선우협의 학문에 대해, 宋時烈(1607~1689)은 『둔암전서』의 서문에서 “造化의 本源과 性命의 精微한 점을 모두 논설하되, 모두 經傳과 濂洛關閩의 책에서 나왔으니 學者의 指南이다.”라고 극찬하였다.
이 諡狀은 1909년(융희 3)남정철이 지은 것이다. 선우협에게 賜諡하자는 논의는 1882년(고종 19)洪淳穆(1816~1884)과 1905년(광무 9)李載克(1864~1927)이 고종에게 올린 적이 있지만 실행되지는 않았다. 이후 1909년 1월 31일에 純宗平壤에 묵었는데, 이때 崇靈殿, 崇仁殿 등에 致祭하고 선우협에게 賜諡할 것을 명하였다. 시장에는 賜諡의 명이 선우협의 사후 236년, 즉 1889년(고종 26)의 일이라고 기술되어 있으나 잘못이다. 본문의 ‘己酉’라는 干支와 ‘皇輿’라는 황제의 칭호, 『순종실록』의 기록을 참조하면 1909년의 일이 확실하다. 그리고 같은 해 10월 5일에 文簡이라는 시호가 내려진다. 따라서 시장이 찬술된 해는 1909년이 분명하다.
시장은 찬술 배경, 평생의 이력과 사후에 이어진 칭찬, 저술과 그에 대한 송시열의 평을 중심으로 구성되었다. 자세한 내용은 위에 제시된 바와 같다. 마지막에는 泰川平壤이 公의 덕으로 鄒魯와 같은 고장이 되었다는 찬자의 칭송이 덧붙었다. 반면, 성명과 생몰년, 가계, 配位, 子孫 등은 글의 곳곳에 짤막하게 기록되어 일반적인 시장의 구성을 약간 벗어났다. 이러한 짜임은 선우협의 學行을 강조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특성 및 가치
선우협의 學行에 대한 후대의 평가를 종합적으로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집필자
이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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