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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연경묘지만(延慶墓誌輓)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김조순(金祖淳) 등(等) 찬(撰)
작성시기    :
1830 / 순조 30년
형태사항    :
크기: 31.5×22.4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인장정보: 李王家圖書之章
청구기호    :
K2-665
M/F번호    :
MF35-1620
기록시기    :
1830年(純祖 30) 以後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영돈녕부사 金祖淳(1765~1832)이 순조의 장자인 孝明世子(1809~1830)를 애도하면서 지은 묘지문과 시책, 애책문, 친제문 등을 모은 책이다.
서지사항
表紙書名은 ‘延慶墓誌輓’이다. 표지 서명 하단에는 冊次가 ‘全’으로 표기되어 있다. 제1면 우측 상단에는 ‘李王家圖書之章’이 날인되어 있다. 본문은 괘선이 없는 종이에 淨書하였는데, 도할하여 수정한 부분이 있다.
체제 및 내용
효명세자 사후 무덤의 이름이 ‘연경묘’였기 때문에 제목을 ‘연경묘지만’이라 하였다. 영돈녕부사 김조순이 지은 묘지문과 호조판서 朴宗薰(1773~1841)이 찬술한 애책문, 한성부판윤 金履喬(1764~1832)가 지은 시책문, 병조판서 洪奭周(1774~1842)가 지은 丁字閣上梁文, 순조가 지은 것으로 보이는 親祭文이 앞부분을 구성하고 있다. 이후 각 관청과 각도에서 향을 올리는 進香文, 당시 관료 및 많은 이들의 죽음을 애도하는 輓章이 그 뒤를 따르고 있다. 묘지문에서 김조순희정당에서 22세의 나이에 질병으로 졸한 효명세자를 추도하였다. 효명세자의 죽음은 왕실의 슬픔이자 온 백성의 슬픔이라고 하면서 그 죽음을 애도하였고 문효세자의 예에 따라 순조는 참최복을 순원왕후는 자최복을 입는 예를 밝히고 그 시호를 孝明, 묘를 延慶, 묘호를 文祐라 함을 밝혔다.
이후에는 효명세자순조의 제1자이며 1809년 창덕궁 대조전에서 태어나 1812년 희정당에서 세자로 책봉된 이래 1819년 풍양조씨 조만영의 딸과 결혼한 일을 기술하였다. 1827년에는 순조효명세자의 대리청정을 명하자 신하들이 반대하고 세자가 세 번 사양했지만 끝내 중희당에서 대리청정을 시작하게 된 경위를 기술하였다. 대리청정을 시작한 후 순조純元王后(1789~1857)의 존호를 올리고, 1829년에는 순원왕후의 40세 생일을 맞아 자경전에서 進爵하고, 1830년에는 순조의 40세 진연을 명정전에서 여는 등 그 과정에서 女伶을 입궐시키면 안 된다는 반발을 빚기도 했으나 진연을 통해 왕실을 강화하는 행보를 보인 일 등을 자세히 서술했다. 그러나 대리청정 4년 만에 병이 심해져 희정당에서 22세의 나이로 졸한 사실까지 묘지문에서 기술했다. 시책문과 애책문 역시 효명세자의 생애를 간략하게 기술하면서 슬픔을 표했다. 순조가 직접 찬한 것으로 보이는 친제문은 자식을 잃은 슬픔을 여과 없이 그대로 드러냈다. 그 뒤에는 진향문과 만장이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특성 및 가치
효명세자가 사망한 1830년(순조 30) 이후에 전해진 사본 형태의 글로 효명세자翼宗으로 추숭되기 전의 기록으로 보인다. 장서각 소장본이 유일본이다.
집필자
신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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