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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건릉지장속편(健陵誌狀續編)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심상규(沈象奎) 등(等) 찬(撰)
작성시기    :
1823 / 순조 23년
형태사항    :
크기: 36.5×23.5cm / 판본: 금속활자본(金屬活字本)(현종실록자(顯宗實錄字))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5.0×17.0cm / 인장정보: 奉謨堂印
청구기호    :
K2-654
M/F번호    :
MF35-1885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1821년(純祖 21) 正祖妃 孝懿王后 金氏가 승하하자 水原 顯隆園 동쪽에 자리한 正祖健陵領敦寧府事 金祖淳의 上疏에 따라 顯隆園 오른편으로 옮기고 효의왕후를 합장한 사실을 적은 遷陵誌文과 효의왕후의 일생을 기록한 行錄, 行狀 등을 수록한 문헌이다.
서지사항
表紙書名, 版心題, 書根題는 모두 ‘陵誌狀續編’이다. 표지 서명 하단에는 冊次가 ‘全’으로 표기되어 있다. 同書는 9部로 표지 우측 상단에는 ‘正祖’, ‘孝懿’라는 편명이 기재되어 있는 본과 기재되지 않은 본이 있고, 책 크기가 균일하지 않다. 장서각 소장의 동일 서명 『健陵誌狀續編』(K2-655)과 같은 체제와 내용을 지닌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는 編者未詳의 『健陵誌狀續編』(奎1937, 奎3891, 奎7754, 奎7755) 등이 소장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沈象奎가 찬한 정조에 관한 遷陵誌文과 遷陵表石陰記, 그리고 효의왕후에 관한 行錄, 金履喬가 지은 行狀, 김조순이 찬한 誌文, 鄭彙良이 지은 封王世孫嬪敎命文, 金陽澤의 竹冊文, 黃景源의 封王妃敎命文, 金鍾秀가 지은 玉冊文, 김조순이 찬한 上王大妃號玉冊文, 趙鎭寬의 樂章, 金魯敬의 諡冊文, 金載瓚의 哀冊文, 순조가 직접 지은 殯殿親祭文 등이 수록되어 있다.
대제학 심상규가 찬한 천릉지문에서 정조健陵이 본래 華城 현륭원 동쪽 산기슭에 있었으나 효의왕후1821년 승하하고 合葬 논의 과정에서 당시 “건릉의 지세가 낮고 聖人을 오래 안장할 곳이 못 된다.”는 김조순의 건의에 따라 현륭원의 우측 子坐 산등성이에 천릉한 내력을 소개했다. 이후 정조1752년(영조 28) 태어난 후 8세에 왕세손에 책봉되고 10세에 입학 후 동궁으로 책봉된 성장 과정을 서술했다. 이후 1775년 대리청정 후 1776년 즉위 과정과 정조의 업적을 상세히 서술한 후 49세의 나이로 1800년 창덕궁 迎春軒에서 승하하기까지의 과정을 서술하였다.
다음으로 효의왕후 김씨청풍김씨현종비 명성왕후의 집안 후손인 김시묵의 딸로 漢城의 私家(嘉會坊)에서 1753년 태어난 후 9세에 간택되고 10세에 세손빈으로 책봉된 이력을 서술했다. 이후 혜경궁 홍씨정순왕후를 잘 섬긴 일과 1776년 왕비에 책봉된 일, 1821년 창경궁 慈慶殿에서 승하한 후 시호를 孝懿로 올린 일을 서술했다.
그 뒤에는 健陵현륭원 동쪽 제2岡에서 현륭원의 오른쪽 산등성이의 子坐로 옮긴 이력을 서술한 遷陵表石陰記와 효의왕후의 일생을 서술한 行錄, 행장, 지문 등이 뒤를 따른다.
참고문헌
正祖實錄
純祖實錄
列聖誌狀通紀
집필자
신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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