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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어제어필(御製御筆)

기본정보

류    :
자부
작성주체    :
영조(英祖) 어필(御筆)
작성시기    :
1725
형태사항    :
크기: 31.2×17.5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절첩장(折帖裝) / 수량: 1첩(帖)(4절(折)) /
청구기호    :
K3-492
M/F번호    :
MF35-1726
기록시기    :
1725~1776年(英祖年間)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英祖(1694~1776)의 어제어필로 추정되는 8자를 장황한 서첩이다.
서지사항
折帖이지만 書背에 종이를 붙여 제책했다. 초록색 비단으로 된 표지의 가운데에 “御製御筆”이라고 쓰고 붉은색 테두리를 한 제첨을 붙였다. 4張 8面으로 본문은 상단과 하단에 붉은색 테두리를 하였고, 한 면에 한 글자가 씌어있다. 본서는 장서각에 소장된 『어제어필』(K3-493, K3-494) 粧䌙형태, 본문의 형식이 동일하다. 특히 『어제어필』(K3-493)은 내용, 글씨, 구성 등까지 똑같다.
체제 및 내용
‘할아버지와 손자가 서로 의지한다’는 뜻의 ‘祖孫相依’와 ‘동궁을 잘 보필하라’는 뜻의 ‘善輔春桂’ 大字 楷書 8자가 한 면에 한 자씩 연이어 씌어 있다. 글자의 위아래로는 붉은색 계선이 그려져 있다.
이 서첩은 장서각에 소장된 『어제어필』(K3-491, K3-493, K494)과 함께 영조의 어제어필로 간주되고 있으나, 자료의 어디에도 영조의 어필임을 알려 주는 근거는 없다.
‘祖孫相依’라는 말은 『영조실록』 42년(1766) 6월 15일 기사를 보면 동궁(훗날 정조)이 조섭을 잘못해 병에 걸리자 영조가 이를 근심한 나머지 함께 병이 들어 ‘祖孫이 서로 의지하는 마음으로써 밤낮으로 애가 타 손상을 입었다’고 한 말에서 처음 등장하며, 이후 1775년(영조 51) 영조가 죽기 한 해 전에 건강상의 이유로 동궁에게 대리청정 명을 내렸으나, 동궁이 명을 거둬 달라는 상소를 거듭 올리자 ‘조선이 할아비와 손자에게 서로 의지하고 있는 데, 한결같이 어찌 네 할아비를 곤란하게 하느냐”며 내린 비답에도 같은 말이 나온다.
‘善輔春桂’라는 말에서 ‘春桂’는 왕세자가 거처하는 동궁 소속 관아인 春坊桂坊을 뜻한다. 『영조실록』을 보면 1762년(영조 38)사도세자가 죽자 그해 7월에 명나라의 고사를 따라 世孫宮東宮이라 칭하고 춘방계방을 다시 설치하였다. 그리고 1764년(영조 40) 2월에 동궁(훗날 정조)을 효장세자의 후사로 삼아 종통을 잇게 하는 명을 내렸다. 따라서 “祖孫相依 善輔春桂” 8자가 영조의 어제어필이라면 1766년(영조 42) 이후의 어제어필이될 것이다. 그런데 이 첩에 실린 8자는 영조가 선호하며 즐겨 썼던 조맹부의 가지런한 蜀體가 아니라, 왕희지 바탕의 晉體에 가까운 글씨다. 영조가 진체를 쓰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소수에 불과하고 小字에 국한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이렇다 할 款署도 없는 이 필적을 영조의 어제어필이라고 단정하기에는 조심스런 면이 있다.
참고문헌
영조실록』 42년(1766) 6월 15일(계축).
영조실록』 51년(1775) 12월 7일(경술).
집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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