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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한서찬(漢書纂)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반고(班固)(한(漢)) 찬(撰), 능치륭(凌稚隆)(명(明)) 교열(校閱)
작성시기    :
[1672] / 현종 13년
형태사항    :
크기: 34.0×22.0cm / 판본: 금속활자본(金屬活字本)(무신자(戊申字))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8권(卷) 8책(冊) / 판식: 반곽(半郭) 24.6×17.0cm / 인장정보: 李王家圖書之章
청구기호    :
K2-9
M/F번호    :
MF35-1882
기록시기    :
[1672~1731年(顯宗 13~英祖 7)]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1583년(만력 11) 凌稚隆이 『漢書』의 일부를 抄錄한 후 明代까지 이루어진 諸家의 평론을 모아서 편찬한 책이다.
서지사항
表紙書名은 ‘漢書纂’이며, 판심제는 없다. 표지는 후대에 改裝되었고, 충해로 인해 일부 배접된 곳도 보인다. 총 8책이며, 권수 하단에 장서인이 날인되어 있었으나 모두 刀割되었다. 도할된 부분에는 장서인과 함께 잘려 나간 내용이 필사되어 있다. 본문에는 독서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批點이 간혹 나타난다. 본서는 1672~1731년校書館에서 인출한 戊申字本이다.
체제 및 내용
본서는 凌稚隆이 『漢書評林』의 방대한 내용을 보완하는 한편 漢代의 역사 및 班固의 문장법을 쉽게 익히는 데 편리하도록 편찬한 것이다. 『漢書』는 모두 100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본서는 그중 67편만을 선정하고 명대까지 이루어진 제가의 평론을 欄上에 간략하게 수록했다. 편찬 방식을 보면 ‘帝紀’에서는 序를 취하고, ‘志’에서는 그 대략만을 취했으며, ‘列傳’에서는 전체 또는 일부를 취사선택하였다. 凌稚隆은 이 책의 편찬에 앞서 1581년(만력 9)에 『사기찬』을 편찬했는데, 그 당시에 이미 『한서찬』의 편찬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는 『한서찬』에 『사기찬』과 중복되는 내용이 있으면 인물의 사적은 생략하고 『사기』에 수록되지 않았던 ‘奏疏’를 위주로 선별했다는 점에서 확인된다.
현전하는 중국본 『한서찬』은 1583년(만력 11)에 간행된 凌稚隆의 自刻本과 명말 간본으로 추정되는 還讀齋本이 있다. 두 간본의 차이는 서문의 내용을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장서각 소장본에는 1538년 凌稚隆의 서문이 있어 凌稚隆의 자각본을 저본하여 조선 校書館에서 1672년(현종 13)부터 1731년(영조 7) 사이에 戊申字本을 인출한 것임을 알 수 있다.
특성 및 가치
조선에서 간행된 본서는 현재 무신자본만이 유일하게 알려져 있다. 『한서평림』이나 기타 『한서』 선집본에 비해 널리 유통되지는 않았지만 국가의 공인을 거쳐 간행되어 조선 후기까지 과거 수험서로 활용되었다. 조선시대에 간행된 역대 『한서』 선집본 중에서 가장 많은 편을 수록하고 있으며, 조선에서 중국본을 활용했던 일면을 실증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서적으로 가치를 지닌다.
참고문헌
김소희, 「중국본 『史記』·『漢書』의 조선 유입과 編刊에 관한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2.
집필자
김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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