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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일성록초(日省錄草)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규장각(奎章閣) 편(編)
작성시기    :
1901 / 광무 5년
형태사항    :
크기: 23.0~29.4x17.9~20.4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불분권(不分卷) 41책(冊) / 판식: 반곽(半郭) 19.3~24.8×13.8~17.0cm /
청구기호    :
K2-89
M/F번호    :
MF35-794~799, 831~833
기록시기    :
1901~1910年(光武 5~隆熙 4)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1901년(光武 5)부터 1910년(隆熙 4)까지의 『일성록』 초고이다.
서지사항
서명은 구 표지의 表紙書名에 근거하였다. 表紙書名, 書根題는 모두 ‘日省錄’이다. 표지는 흰색으로 卍字文이며, 五針眼으로 線裝되었다. 제첨은 테두리가 목판으로 인쇄되었고, 서명은 필사되었다. 표지 서명 하단에는 冊次가 ‘一·二 …… 四十一’로 표기되어 있다. 書腦 하단에 ‘共四十一’이라는 기록이 있다. 본문은 上下向二葉花紋魚尾로 된 목판 인찰공책지에 필사되었는데, 주색으로 批點을 찍거나 교정한 부분이 있다. 또한 籤紙를 부착하여 교정에 이용한 흔적이 있다. 전 41책이 동일한 형식이 아닌데 일부는 목판 인찰공책지에 필사되지 않은 것도 있으며, 책 크기도 균일하지 않다.
체제 및 내용
정조 이후 『일성록』은 실록이나 『승정원일기』보다 國史의 중심에 있게 되면서 그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1907년(융희 1) 11월에 국왕 비서실 기능이 규장각으로 단일화되고 大提學이 설치되면서 승정원 기능이 바뀌었지만 『일성록』의 편찬은 여전히 규장각의 중요한 임무 가운데 하나였다. 『日省錄草』는 『일성록』 편찬 과정에서 정서하기 전에 만든 초책이다. 『日省錄草』의 작성도 『日省錄凡例』에 입각하여, 立綱總例·天文類·祭享類 이하 臨御召見類·頒賜恩典類·除拜遞解類·疏箚類·啓辭類·草記書啓別單類·狀啓類·科試類·刑獄類까지 총 11류의 유별 기록에 따라 정리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날짜는 양력과 음력을 병기하였으며, 초책이기는 하지만 『일성록』의 記事 양식과 마찬가지로 주요 사항을 綱으로, 그에 대한 세부 사실을 目으로 삼아 체제를 갖추었다. 『日省錄草』에는 1901년(광무 5) 2월 19일부터 1910년(융희 4) 8월 28일까지의 사실이 수록되어 있다. 본문 중에 삭제하거나 오류를 수정한 곳도 여러 곳이 있는데, 일부 기사나 용어는 삭제하려고 했는지 옆줄을 긋거나 둥글게 묶어 놓거나 크게 ‘×’로 표시하였다.
특성 및 가치
현재 규장각에는 1901년 2월분, 1907년에서 1910년까지 33책의 『일성록』이 남아 있는데, 『日省錄草』는 한일강제병합 전 10년의 구체적인 역사 전개를 알 수 있는 사료이다. 시기가 중복되는 경우가 있다고 하더라도 『日省錄草』는 草冊에서 『일성록』 편찬과 첨삭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서지 자료로서 가치가 높다.
집필자
오항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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