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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일성록초(日省錄草)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규장각(奎章閣) 편(編)
작성시기    :
1907 / 융희 1년
형태사항    :
크기: 31.0x21.1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4.4×16.9cm /
청구기호    :
K2-88
M/F번호    :
MF35-4786, 831~833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1907년(융희 1) 12월부터 이듬해 1908년(융희 2) 1월 2일까지의 『日省錄』의 초고이다.
서지사항
구 표지의 表紙書名은 ‘日省錄草’, 書根題는 ‘日省錄’이다. 개장된 표지는 연두색이며, 五針眼으로 線裝하였는데, 서명이나 권차에 대한 기록이 없다. 구 표지에는 서명과 ‘隆熙元年十二月一日至四日’과 같은 편명은 흑색으로, ‘正書’, ‘考’와 같이 검사와 관련된 기록은 주색으로 필사되어 있다. 본문은 上下向二葉花紋魚尾로 된 목판 인찰공책지에 필사되었는데, 주색으로 批點을 찍거나 교정한 부분이 있다. 그리고 본문 사이에 낱장으로 된 국한문 혼용 필사 기록이 끼워져 있다.
체제 및 내용
正祖 이후 도서관 기능을 하던 규장각대한제국이 성립되면서 지위가 크게 높아졌다. 특히 정조 이후 『일성록』이 실록이나 『승정원일기』보다 國史의 중심에 있게 되면서 그 중요성이 더욱 커졌다. 1907년(융희 1) 11월에 국왕 비서실 기능이 규장각으로 단일화되고 大提學이 설치되었다. 이러한 배경에서 『일성록』의 편찬은 규장각의 중요한 임무의 하나였다. 『日省錄草』는 그 과정에서 정서하기 전에 만든 초책이다.
내용으로는 1907년 12월 1일 宮內府 官制 개혁이 먼저 주목을 끈다. 궁내부 소속 관청은 侍從院, 掌禮院, 承寧府, 皇后宮, 東宮, 奎章閣, 內藏院, 典膳司, 主殿院, 帝室會計監査院, 宗親家職이었다. 이는 『奎章閣日記』에서도 상세히 확인되는 바, 『일성록』의 記事 양식과 마찬가지로 주요 사항을 綱으로, 그에 대한 세부 사실을 目으로 삼아 체제를 갖추었다. 이외에 시종원 卿 閔丙奭에게 궁내부 대신의 사무를 대신하게 하는 일, 충청도 등 재판소 기결수 처리 사안 등이 기재되어 있다.
본문에는 삭제하거나 오류를 수정한 곳도 여러 곳이 있는데, 11월 2일 기사 중 일부를 삭제하였으며 ‘충남’을 ‘충청도’로 수정하였다. 일부 기사나 용어는 삭제하려고 했는지 옆줄을 긋거나 둥글게 묶어 놓았다.
특성 및 가치
이 시기의 『일성록』이 남아 있기 때문에 내용적인 측면에서 『日省錄草』의 사료적 가치는 그리 높지 않다. 그러나 草冊에서 『일성록』 편찬과 첨삭 과정을 살펴볼 수 있는 서지 자료로서의 가치는 높다고 할 수 있다.
집필자
오항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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