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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청송당도선생사적(靑松堂都先生事蹟)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이민(李岷) 등(等) 찬(撰)
작성시기    :
사년미상(寫年未詳)
형태사항    :
크기: 28.5×18.2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0.1×14.7cm / 인장정보: 李王家圖書之章
청구기호    :
K2-835
M/F번호    :
MF35-4796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여말선초의 문신인 靑松堂 都膺의 事蹟과 杏亭 都衡, 雲齋 都勻 등의 遺集이 합철되어 있는 문집이다.
서지사항
四周單邊, 半葉 10行, 上下向白魚尾의 木板 印札空冊紙에 필사하였다. 表紙書名은 ‘靑松堂事蹟’이며 版心題는 내용에 맞게 ‘松’, ‘杏’, ‘雲’으로 다양하게 필사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靑松堂都先生事蹟에 杏亭都先生遺集과 雲齋都先生遺集이 합철되어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靑松堂都先生事蹟」은 李岷 撰의 「高麗佐平都公遺史」에 이어, 王旨 4통[홍무 26년(1393)부터 건문 원년(1393~1399)까지의 왕지], 王命(祿牌) 1통(홍무 27년 10월)이 수록되어 있고, 「辭職辭祿箋略」, 「芙蓉抱香死詞」(族孫 都以敬 찬), 9대손 都命元(1700~1740, 진사 입격)이 1743년(영조 19)에 쓴 발문, 「雲川世德祠奉安文」 (참봉 李㙖 찬), 常享祝 등이 실려 있다.
靑松堂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이자 충신인 都膺(생몰년 미상)의 호이다. 도응의 본관은 星州, 초명은 , 자는 子藝이다. 이성계의 竹馬之友로 고려 말에 贊成事를 지내다가 1392년 조선 건국 후 태조가 특히 옛정을 생각하여 上將軍에 임명하였으나 사퇴하여 받지 않았다. 그 뒤 洪州 老隱洞에 은거하여 5차례의 召命을 모두 거절하여 不事二君의 귀감이 되었다. 청송당태조가 그의 곧은 節義에 찬탄하여 내려준 호이다.
「杏亭都先生遺集」은 詩 1수, 祭文 1편에 이어, 附錄으로 己卯鄕薦目(承旨李景明 찬), 工曹薦目, 己卯錄, 己卯榜目跋(鄭寒岡), 京山舊志, 京山志, 海東名賢錄, 墓誌, 復科後告由文, 祭文, 先生家廟西壁, 行狀(金軸), 請褒贈先生疏, 川谷書院東祠上梁文(府使 呂孝曾), 川谷東祠奉安文(朴羾衢 師傅), 常享祝(柳奎), 雲川世德祠奉安文(李瑀), 常享祝, 杏亭都先生行錄, 家藏敍次 등의 순서로 수록되어 있다.
杏亭은 조선 중기의 문신인 都衡(1480~1547)의 호이다. 도형의 본관은 八莒, 자는 國銓이다. 1519년(중종 14) 趙光祖 등이 사림정치를 주도하면서, 학행으로 賢良科에 천거되어 3등으로 급제한 뒤 전적·공조좌랑·형조좌랑·호조좌랑 등을 역임하였다. 그해 11월 기묘사화로 인하여 파직당하고 향리에 물러나 학문에 전심하였다. 1545년(명종 즉위년) 8월 인종의 유언으로 현량과의 동료들과 함께 복관되어 성균관전적에 임명되었으나, 같은 달에 을사사화가 일어나 다시 파직되었다. 낙향 후 아우 과 함께 후진 양성에 힘썼다.
「雲齋都先生遺集」은 詩 5편, 文 2편, 策 1편, 雜著, 附錄(輓章 3편, 墓誌, 行狀, 墓碣銘, 雲川世德祠奉安文, 常享祝, 行錄, 雲川世德祠上梁文)으로 구성되어 있다. 운재都勻(1483~1549)의 호이다.
집필자
임선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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