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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채미헌선생실기(採薇軒先生實記)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전석윤(全錫允) 등(等) 편(編)
작성시기    :
1866 / 고종 3년
형태사항    :
크기: 29.5×19.3cm / 판본: 목활자본(木活字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2권(卷)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19.8×14.4cm / 인장정보: 李王家圖書之章
청구기호    :
K2-832
M/F번호    :
MF35-1868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고려 말 杜門洞 72현의 한 명인 採薇軒 全五倫 관련 자료를 수습하여 조선 말기에 편찬한 문집이다.
서지사항
表紙書名, 書根題는 ‘採薇軒實紀’이며, 卷上의 版心題는 ‘採薇軒先生本傳’, 卷下의 판심제는 ‘採薇軒先生實記’이다. 권말에 ‘崇禎紀元後四丙寅西山書院重刊’이라는 간기가 있어 본서가 1866년(고종 3)에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체제 및 내용
상하 2권 1책으로 되어 있다. 상권에는 권수에 李景在(목은 16대손, 판돈령부사), 鄭文升(포은 15대손, 판서), 鄭煥翼(포은 15세손, 전 승정원 좌승지), 韓致肇(1869년), 朴憲陽(1869년, 안의현감), 金陽淳(1833년, 경상관찰사), 徐有畬(1834년, 知縣) 등 7인의 서문이 있으며, 이어 목차와 本傳이 있다. 하권에는 述懷, 宰陜州時答柳巷韓修詩, 附諸賢寄贈, 字說, 臨瀛野史, 九貞忠, 圃隱善友, 西行錄, 不朝峴言志錄, 御製不朝峴聯句, 不朝峴碑, 陰記, 英宗大王御製御筆杜門洞碑, 碑閣上樑文, 禮曺了, 致祭文, 傳敎, 書筵達辭, 祠宇錄, 西山書院奉安告文, 釋菜祝文, 採薇軒先生世系, 附四樂亭遺事가 있고, 卷末에 通訓大夫 安義縣監 吳達善1866년에 쓴 跋文이 있다.
이 가운데 「述懷」는 전오륜瑞雲山에서 松京을 바라보며 통곡한 詩이며, 字說은 오륜의 字(仲至)를 李穡이 풀이한 것이다. 附諸賢寄贈은 이색, 韓脩, 鄭夢周, 申晏, 李遂生 등이 전오륜을 위해 쓴 글들이며, 九貞忠은 전오륜, 金自粹, 신안, 李行, 李思敬, 李遂生, 高天祐, 裵尙志, 鄭凞良 등 9명의 간단한 略歷을 수록한 것이다. 圃隱善友에는 邊安烈, 전오륜정몽주와 가까이 지내던 9명의 이름이 열거되어 있으며, 不朝峴言志錄은 麗末의 忠臣 및 두문동에 들어간 사람들의 행적이 기술되어 있다. 御製不朝峴聯句는 英祖松都에 갔을 때 不朝峴에 관한 故事에 감동받아 지은 글이다.
採薇軒은 고려 후기의 문신인 전오륜의 호이다. 본관은 旌善이고, 字는 仲至이며, 대제학 의 아들이다. 공민왕 때 과거에 급제하였으며, 1391년(공양왕 3) 右常侍로 있을 때 정몽주와 더불어 왕을 모시고 五罪를 정하는 것에 대해 논의하였다. 이어 左散騎常侍·刑曹判書를 거처 大提學에 올랐다. 이색·정몽주 등과 깊은 교유를 맺었다. 국정이 불안할 때 정몽주와 더불어 여러 차례 상소를 올려 정사를 바로잡고자 애썼다.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으로 들어갔다가 조선 태조에 의하여 本鄕安置의 처벌을 받았다. 나중에 풀려나서 瑞雲山에 은거하였다. 두문동 72인 중의 한 사람이며, 뒷날 안의의 西山書院에 제향되었다. 伯夷叔齊를 흠모해 호를 採薇軒이라 하고, 나라 잃은 백성이 해를 어찌 보겠느냐며 외출할 때는 항상 패랭이를 쓰고 다녔다.
집필자
임선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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