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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정이품자헌대부궁내부특진관리공인철시장(正二品資憲大夫宮內府特進官李公寅轍諡狀)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박용대(朴容大) 찬(撰)
작성시기    :
1910 / 융희 4년
형태사항    :
크기: 37.0×24.4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6.0×17.9cm / 인장정보: 藏書閣印
청구기호    :
K2-814
M/F번호    :
MF35-1955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조선 말기의 문신 李寅轍(1832~1909)의 諡號를 청하기 위해 朴容大(1849~?)가 작성한 諡狀이다.
서지사항
서명은 表紙書名에 근거하였다. 본문은 주색 필사 인찰공책지에 淨書하였는데, 충해나 습기로 손상된 부분도 있다.
체제 및 내용
이인철은 조선 말기의 문신으로, 자가 由卿, 호가 又癡이다. 초명이 晩奎인데 登科한 뒤에 寅晩으로 고쳤다가 다시 寅轍로 고쳤다. 본관은 全州로, 부친은 李容淵이며 모친은 坡平尹氏 膺采의 따님이다. 1832년(순조 32) 5월 8일 고향 通津에서 태어났다. 丙寅洋擾를 만나 布衣로 從軍하며 여러 계책을 내어 성공하자 명성이 자자했다. 그해 겨울에 江華 別試에 합격하여 司諫院正言, 弘文館副修撰, 禮曹參議, 承政院右承旨, 藍浦縣監, 長湍府使 등 내·외직을 역임하였으나, 通津府使로 있을 때 觀察使의 탄핵을 받아 罷職되어 귀향한 후 두문불출하였다. 1894년(고종 31) 吏曹參議에 제수되었으나 부임하지 않았고, 1905년(광무 9) 마침내 출사하여 宮內府特進官까지 올랐다. 이후 계속 陞資되어 1908년(융희 2)에 正二品 資憲大夫를 받았다. 1909년(융희 3) 11월 3일 서울에서 考終하였다. 1910년(융희 4) 8월 26일 孝憲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이 諡狀은 박용대이인철의 장남 舜夏의 부탁을 받아 쓴 것으로, 박용대는 어려서부터 이인철을 어른으로 모셨다고 한다. 시장이 작성된 시기는 考終한 때와 賜諡된 때로 미루어 1910년일 것으로 짐작된다. 시장의 내용은 ‘가계 - 평생의 이력 - 配位와 자손 - 삶의 종합적인 평가’로 평범하게 구성되어 있다. 이력 중에서는 丙寅洋擾에 從軍했을 때의 행적이 상술되어 있고, 藍浦縣監通津府使로 재임했을 때의 치적이 부각되어 있다. 후자는 觀察使의 탄핵에 대한 해명으로 쓴 듯하다. 평가에서는 특히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와 우애 있고 친족과 화목했던 사실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다.
특성 및 가치
조선 말기에 고관을 지낸 이인철의 생애를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高宗實錄
純宗實錄
집필자
이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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