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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정공해륜시장(鄭公海崙諡狀)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남정철(南廷哲) 찬(撰)
작성시기    :
1906 / 광무 10년
형태사항    :
크기: 34.0×21.8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5.8×17.0cm / 인장정보: 藏書閣印
청구기호    :
K2-813
M/F번호    :
MF35-1922
기록시기    :
1906~1910年(光武 10~隆熙 4)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조선 말기의 문신 鄭海崙(1826~1906)의 諡號를 청하기 위해 南廷哲(1840~1916)이 작성한 諡狀이다.
서지사항
서명은 表紙書名에 근거하였다. 제1면 우측 상단에는 ‘藏書閣印’이 날인되어 있다. 본문은 주색 필사 인찰공책지에 淨書하였는데, 습기로 인해 얼룩진 부분도 있다.
체제 및 내용
정해륜은 조선 말기의 문신으로, 자는 致宗, 호는 海士이다. 본관이 延日로, 文淸公 鄭澈文敬公 鄭澔의 후손이다. 증조는 進煥, 조부는 在純, 부친은 (氵+菊)이며, 모친은 全州李氏 月山大君派 憲圭의 딸이다. 1858년(철종 9) 庭試文科에 급제하여 三司를 비롯한 내·외직을 역임하였다. 1866년(고종 3) 右副承旨로 있을 때 萬東廟 撤廢令에 반대하여 상소를 草案하였으나 사람들이 꺼려 올리지 못하고 낙향하여 두문불출하였다. 1875년(고종 12)에 다시 出仕하여 弘文館提學, 藝文館提學, 禮曹判書, 吏曹判書, 奎章閣學士, 侍講院日講官 등을 역임하였다. 1902년(광무 6) 耆老所에 들어가고 崇祿大夫에 陞資된 뒤에 致仕하고 낙향하였다. 1906년(광무 10) 忠州 樓巖에서 考終하였다.
撰者 남정철은 어릴 적부터 정해륜과 친분이 있었으며, 정해륜의 동서 申泰寬(1839~?)이 스스로 쓴 행장을 보여주며 부탁하였기에 시장을 짓게 되었다. 글의 구성은 가계 - 평생의 이력 - 配位와 자손 - 삶의 종합적인 평가로 평범하게 짜여 있다. 평가 부분에 따르면, 정해륜은 詩를 잘 지어 ‘意外趣’가 많았고 筆法이 遒麗하였으며, 일상적인 편지를 쓰더라도 마음을 놓지 않고 썼다. 또한, 성품과 몸가짐이 雅好恬靜하여 朝廷에서는 權貴와 거의 대면하지 않았고 벼슬하지 않을 때도 門庭이 고요하였다. 남정철은 이러한 그의 재능과 성품이 萬東廟 撤廢令에 반대하는 상소에서 잘 발휘된 것으로 평하였다. 정해륜1910년(융희 4) 8월 26일에 文貞이라는 시호를 받았다.
특성 및 가치
조선 말의 문신 정해륜의 생애에 대해 이제까지 밝혀진 것보다 더욱 구체적으로 알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高宗實錄
純宗實錄
집필자
이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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