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입력기

자료열람

고서

숭록대부형조판서장공석룡시장(崇祿大夫刑曺判書張公錫龍諡狀)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민종묵(閔種默) 찬(撰)
작성시기    :
1908 / 융희 2년
형태사항    :
크기: 41.0×29.7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35.2×22.3cm / 인장정보: 藏書閣印
청구기호    :
K2-771
M/F번호    :
MF35-1887
기록시기    :
1908~1910年(隆熙 2~4)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조선 말기의 문신 張錫龍(1823~1908)에게 諡號를 내려주기를 청원하기 위해 閔種默(1835~1916)이 찬술한 諡狀이다.
서지사항
表紙書名은 ‘張公錫龍謚狀’이다. 본문은 필사 인찰공책지에 淨書하였다.
체제 및 내용
본 諡狀은 민종묵장석룡의 아들 張承遠(1853~1917)의 부탁을 받고 家狀을 참조하여 지었다. 내용은 ‘가계 - 생애 - 배위와 자손 - 품행 - 찬술 동기’의 평이한 구성으로 되어 있다. 생애에서는 장석룡의 출생부터 별세까지 연대순으로 열거하되 官歷이 대부분을 차지하며 중요한 사건은 자세히 서술하였다. 품행에서는 그의 성격과 평소의 公的, 私的 언행을 정리하였다.
시장에 따르면 장석룡은 초명이 龍逵이고, 자가 震伯이며, 호는 遊軒 또는 雲田이다. 본관은 玉山[仁同]으로 旅軒 張顯光(1554~1637)의 후손이며, 學樞의 아들로 태어나 (木+悳)에게 입양되었다. 1846년(헌종 12) 庭試文科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하여 淸要職을 두루 거쳤다. 館閣文을 精麗하게 지어 心庵 趙斗淳(1796~1870)의 칭찬을 받았고, 牧民官으로서 탁월한 치적을 남겨 觀察使의 褒奬을 여러 번 입었다. 또한 장석룡은 모습이 단정하고 성품이 너그러우며 집에서는 효성스럽고 검소하였으며, 조정에서는 致君澤民을 임무로 여겼다. 그의 문장은 기세가 좋았으며, 시는 雅健하고 平淡하였으며, 만년에는 性理學에 심취하였다. 본 시장을 바탕으로 1910년(융희 4) 7월 26일에 장석룡에게 文憲이라는 시호가 하사되었다.
특성 및 가치
조선 말기의 문신 張錫龍의 생애를 연구하는 데 기초 자료로 삼을 수 있다.
참고문헌
純宗實錄
집필자
이태희

PDF서비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