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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선부군행장(先府君行狀)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조운규(趙雲逵) 찬(撰)
작성시기    :
1760 / 영조 36년
형태사항    :
크기: 29.8×20.5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인장정보: 李王家圖書之章
청구기호    :
K2-765
M/F번호    :
MF35-1083
기록시기    :
1760~1774年(英祖 36~50)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조선 후기 문신 趙榮國(1698~1760)의 행장이다.
체제 및 내용
행장의 말미에 있는 가계 기술에 근거하면 작성자는 조영국의 아들 趙雲逵(1714~1774)이다. 작성 시기는 분명하지 않으나 조운규의 아들 趙宗鉉(1731~1800)이 佐郞을 역임하고 있던 시기로 18세기 후반인 영조 대 후반으로 보인다. 참고로 조운규1755년(영조 31) 전라도관찰사로 나주괘서 사건을 일으킨 尹志를 체포한 노론계 인물이다. 본문의 구성은 「先府君行狀」, 즉 조영국의 행장으로만 구성되어 있다.
조영국의 본관은 楊州, 자는 君慶, 호는 月湖이다. 1723년(경종 3) 진사시에 합격하고, 1730년(영조 6) 奉事로서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외직으로는 1736년 제주도 안핵어사로 나갔고, 이듬해 교리로서 北關監賑御史가 되어 평안도함경도의 기민 구제 상황을 감독하였다. 1740년(영조 16) 공홍도관찰사, 1742년(영조 18) 전라도관찰사, 1747년(영조 23) 평안도관찰사를 역임하였고, 1756년(영조 32) 강화부유수를 지냈다. 한편 1750년 균역청이 설치되자 당상관이 되어 結米節目을 제정하는 등 조세 운영의 합리화에 기여하였다. 균역청 당상으로서 세제 개혁에 발휘한 실력이 인정되어 1752년 호조판서에 특진되었다. 조영국은 정치적으로는 노론계 인물로 보이나 정치성은 약하고, 육조판서참판, 참지육조에서 풍부한 경험을 갖춘 행정 관료적 인물로 보인다. 특히 均役廳의 세제 개혁에서 실력을 발휘하여 1752년 호조판서로 특진된 점으로 보아 전형적인 경제 관료에 가까운 인물로 보인다.
특성 및 가치
조영국의 생애와 행적을 이해하는 데 귀중한 자료이다. 그의 저술로는 국립중앙도서관에 소장된 『月湖漫稿』가 있어서 본 도서와 함께 조영국에 관한 기본 자료가 된다. 『農事總論』도 그의 저술로 알려져 있으나, 1799년(정조 23) 남원의 幼學 조영국정조의 勸農政求農書綸音에 응하여 저술한 것으로서, 본 도서에서 다루는 조영국과는 동명이인이다.
집필자
이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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