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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공실기(文獻公實紀)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정구(鄭逑) 편(編)
작성시기    :
1635 / 인조 13년
형태사항    :
크기: 32.4×21.5cm / 판본: 목판본(木版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2권(卷)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2.2×17.4cm / 인장정보: 李王家圖書之章
청구기호    :
K2-738
M/F번호    :
MF35-992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조선 전기의 학자 一蠹 鄭汝昌(1450~1504)의 언행과 행적을 정리한 전기 자료이다.
서지사항
表紙書名, 版心題는 모두 ‘文獻公實記’이다. 표지 서명 하단에는 ‘全’으로 표기되어 있다. 제1면 우측 상단에는 ‘李王家圖書之章’이 날인되어 있다. 卷末의 1635년(인조 13)에 지은 跋을 통해 본 도서가 1635년에 간행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체제 및 내용
寒岡 鄭逑(1543~1620)가 정여창의 후손 秀民의 도움을 받아 정여창의 言行을 전승하기 위하여 편찬한 것이다. 간행 시기는 분명하지 않으나 「褒贈祀典」의 마지막 기사가 1610년(광해 2) 오현종사가 결정된 내용이므로 정구가 본 도서를 저술한 시기는 광해군 대라고 생각된다. 1635년(인조 13) 9월 張顯光의 발문에 따르면 이미 간행하고 함안 유생(郡儒)이 발문을 부탁한 것으로 되어 있다. 나중에 神道碑를 세우게 되자 1689년(숙종 15)정여창의 6世孫 世楨과 7世孫 熙章 등이 神道碑銘 등을 부록하여 간행하였다는 설이 있으나 이는 세정 등이 신도비명만을 追刻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그 뒤 판목의 파손과 마멸이 심하여 1743년(영조 19) 李縡의 발문을 붙여 남계서원에서 重刊하였다. 그 뒤 새로 증보한 시문 및 관계 기록을 재편집하여 『一蠹遺集』의 이름으로 田愚의 교정을 거쳐 1919년 남계서원에서 목판으로 간행하였다. 따라서 정여창의 전기 자료는 세 차례 간행된 것이다.
체제는 크게 卷上, 卷下 2권으로 구성되어 있고, 권수에 「범례」, 「목록」이 있고, 권말에 부록이 있다. 卷上은 첫머리에 대략 李楨의 『景賢錄』의 편집 체제에 근거하였으나 억지로 맞추지 않았다는 간략한 범례를 시작으로 「世系」, 「事實」, 「行狀」, 「遺事」, 「敍述」, 「遊頭流錄話」, 「名說」, 「薦學行疏」, 「先生著述」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卷下는 「史禍首末」, 「褒贈祀典」, 「祭文」, 「碑」, 「詩章」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지막에는 함안군의 유생들의 부탁으로 1635년 장현광이 쓴 발문이 있다.
특성 및 가치
일두 정여창의 생애와 행적을 이해하는 데 기초 자료이며, 조선 후기에 간행된 중간본 및 『一蠹集』의 모본이 되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는 판본이다.
집필자
이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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