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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동지중추부사증병조판서이공시장(同知中樞府事贈兵曹判書李公諡狀)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신기선(申箕善) 찬(撰)
작성시기    :
1901 / 광무 5년
형태사항    :
크기: 37.6×27.0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절첩장(折帖裝) / 수량: 1첩(帖) / 판식: 반곽(半郭) 27.3×27.0cm / 인장정보: 藏書閣印
청구기호    :
K2-727
M/F번호    :
MF35-1887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조선 중기의 무신·의병장인 李達(1561~1618)에게 諡號를 내려주기를 청원하기 위해 申箕善(1851~1909)이 찬술한 諡狀이다.
서지사항
表紙書名은 ‘李公達謚狀’이다. 표지 서명 하단에는 ‘單’으로 표기되어 있다. 본문은 필사 인찰공책지에 淨書하였다. 권말에 신기선1901년(광무 5)에 찬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체제 및 내용
이 諡狀은 신기선이달의 후손 完洙의 부탁을 받아 1901년에 작성한 글로, ‘서론 - 가계 - 생애 - 配位와 子孫 - 결론’의 순서로 구성되어 있다. 서론과 결론에는 이달에 대한 평가가 있는데, 이는 諡號를 받는 것이 정당함을 주장하기 위한 것이다. 생애 부분은 특히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서 활약한 사실과 광해조 때의 은거를 중심으로 기술되어 있다.
시장에 따르면 이달은 자가 明淑, 호가 雲圃이며, 본관은 咸安이고, 아버지는 世廉이다. 어려서 退溪 李滉(1501~1570)에게서 『小學』을 배웠으며, 經史와 兵書에 통달하였고, 왜란의 기미를 알아 미리 대비했다고 한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고향 固城에서 의병을 일으켜 崔堈과 함께 晉州城에 합세하여 적군을 막아냈고, 이후의 전투에서 연전연승하여 金誠一·郭再祐·李舜臣 등의 신임을 얻었다. 전란이 끝나자 原從二等功臣에 녹훈되고 武官으로 벼슬하다가 1614년(광해 6)永昌大君의 옥사가 일어나자 벼슬을 버리고 고향에 은거하여 삶을 마쳤다. 1818년(순조 18)에 유생들의 건의로 資憲大夫 兵曹判書에 추증되었다. 撰者는 이달이 의병장으로서 戰功이 높고 出處가 분명하기가 忘憂堂 郭再祐(1552~1617)와 같으며, 孝·忠·智·勇를 갖추었으므로 ‘磊磊落落한 士大夫’라고 평가하였다. 賜諡의 여부는 분명하지 않다.
집필자
이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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