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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효자충신공사실록(老孝子忠臣公事實錄)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박맹호(朴孟浩) 편(編)
작성시기    :
1862 / 철종 13년
형태사항    :
크기: 32.0×21.3cm / 판본: 목활자본(木活字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1.0×16.5cm / 인장정보: 光山金永順印, 李王家圖書之章
청구기호    :
K2-718
M/F번호    :
MF35-910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朴忍(1534~1592)의 효성과 그 손자 朴東龍(1605~1636)의 충렬을 顯揚하기 위하여 박인의 9세손 朴孟浩 등이 자료를 수집하여 1862년(철종 13) 경에 간행한 책이다.
체제 및 내용
박인은 평소에 부친 朴文秀(1502~1592)를 잘 봉양하였고, 壬辰倭亂에 노쇠한 몸으로 부친을 업고 피란하다가 부친과 함께 왜적에게 피살되었다. 1599년(선조 32)에는 旌閭를 받았으며, 1666년(현종 7)永同花巖書院이 건립되자 이곳에 배향되었다. 박동룡박인의 맏아들 朴益誠의 獨子로, 丙子胡亂에 자원 종군하여 전사하였다. 1687년(숙종 13)에 旌閭를 받았다. 박맹호는 친족인 朴秉欽과 함께 『宋子大全』과 諸賢의 撰述, 공문서, 각 派의 譜牒 등에서 자료를 수집하여 『老孝子忠臣公事實錄』을 만들었다. 이들은 忠北 永同에 世居한 密陽朴氏의 일족으로, 이 책의 간행은 대대로 忠孝를 이어 온 자기 가문의 전통을 宣揚하는 사업의 일환이었다.
「老孝子萬戶朴公行狀」은 1663년(현종 4)宋時烈(1607~1689)이 박동룡의 아들 朴世忠 등의 청탁으로 지었다. 「老孝子賦」는 송시열의 숙부 宋邦祚(1567~1618)가 박인의 효행에 감동하여 지었다. 「幼學朴益誠爲亡父上疏」는 1599년(선조 32)박익성이 아비의 정려를 청한 글이다. 「永同花巖書院奉安祭文」과 「花巖書院春秋享祝文」은 박인花巖書院 配享과 관련된 글로, 송시열이 지었다. 「三賢事實錄跋」은 1803년(순조 3)송시열의 5대손 宋煥箕(1728~1807)가 朴思述의 『三賢事實錄』에 붙인 발문이다. 朴興生(1374~1446)의 學行과 朴季愚의 忠節, 박인의 孝行을 기록한 책으로, 이들은 모두 영동밀양박씨화암서원에 배향된 분들이다. 「永同邑誌抄」는 邑誌에서 박문수박인, 박동룡의 기사를 초록한 것이다. 박동룡에 대해 ‘今上朝㫌閭’라고 하였으므로 숙종 대에 편찬된 읍지다. 「朴世忠呈本縣狀」과 「丁卯六月日禮曹關傳書」(1687년)는 박세충이 부친 박동룡의 정려를 청원하고, 조정에서 허락하는 내용의 공문서이다. 「祖孫忠孝旌門記」는 趙瓘1705년(숙종 31)박인박동룡의 忠孝 행적과 旌閭 사실을 기록하였고, 「詠旌門詩」는 卞時明이 지었다. 마지막으로 박맹호는 「老孝子忠臣公事實錄後」를 붙여, 자기 가문의 忠孝 전통을 열거하며 자랑하고, 그 연장선에서 박인박동룡의 사적을 현양하기 위해 책을 지었음을 표명하였다. 「先生遺事巧證」도 박맹호가 썼는데, 박문수의 忠義를 증명할 만하다고 생각하는 증거들을, 주로 여기 실린 여러 전적들에서 찾아 모은 것이다.
특성 및 가치
조선 후기에는 가문의 위상을 제고하기 위해 조상의 忠孝를 宣揚하고 국가로부터 襃奬 받는 사업이 많았는데, 이 책의 간행에서도 그러한 의도를 볼 수 있다. 한편, 밀양박씨의 현양 사업에 송방조, 송시열, 송환기 등이 관련된 점에서 영동 지역에 대한 ‘懷德恩宋’의 영향력이 지속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참고문헌
菊堂遺稿
宋子大全
燃藜室記述
增補文獻備考
집필자
이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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