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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남공헌교시장(南公獻敎諡狀)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김재현(金在顯) 찬(撰)
작성시기    :
[1894] / 고종 31년
형태사항    :
크기: 36.5×28.0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6.0×20.6cm / 인장정보: 藏書閣印
청구기호    :
K2-716
M/F번호    :
MF35-1885
기록시기    :
[1894~1895年(高宗 31~32)]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조선 후기의 문신 南獻敎(1798~1864)에게 諡號를 내려주기를 청원하기 위해 金在顯(1808~1899)이 찬술한 諡狀이다.
서지사항
表紙書名은 ‘南公獻敎狀 諡狀’이다. 제1면 우측 상단에는 ‘藏書閣印’이 날인되어 있다. 본문은 주색 필사 인찰공책지에 淨書하였다.
체제 및 내용
이 諡狀은 김재현남헌교의 손자인 南奎熙의 부탁을 받아 지은 것이다. 부탁한 시점이 남헌교의 “별세 후 30년(捐世後垂三十年)”이라고 한 것으로 보아 시장의 찬술 시기는 1894년(고종 31) 또는 그 직후인 것으로 추측된다. 내용은 ‘가계 - 생애 - 배위와 자손 - 품행 - 평가 - 찬술 동기’의 순서로 이루어져 있다. 생애는 官歷과 관직에 있을 때의 구체적인 사실이 주로 기술되어 있다.
시장에 따르면 남헌교는 자가 景曾이고, 초명이 獻中이다. 본관은 宜寧이며, 아버지는 履愚이다. 1827년(순조 27)에 增廣文科에 급제하여 說書에 임명된 것을 시작으로 內外職과 淸顯職을 두루 거쳤다. 공정하고 청렴하며 치밀하고 신중하여 일처리가 법도에 맞았으며, 의 咨文은 모두가 그에게 물어볼 정도로 외교 문서에 밝았다. 永興府使로 재직할 때 폐단을 바로잡고 민생을 안정시켜 해임된 뒤에 백성들이 顯德祠라는 生祠堂을 지어 그를 思慕하였다. 그는 효성이 지극하고 문학에도 능하였으며 도량이 넓었다. 찬자는 그가 국가의 棟樑이 될 재목이었으나 江湖에 고질병이 있어 輿望을 저버린 데다 老成하여 재능을 펼칠 나이가 주어지지 않았다고 평가하였다. 이러한 諡狀의 내용을 바탕으로 1910년(융희 4) 8월 20일에 肅憲이라는 시호가 내려졌다.
참고문헌
純祖實錄
집필자
이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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