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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난곡선생연보(蘭谷先生年譜)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김계진(金啓鎭) 편(編)
작성시기    :
1876 / 고종 13년
형태사항    :
크기: 31.1×20.8cm / 판본: 금속활자본(金屬活字本)(정리자체철활자(整理字體鐵活字))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1.5×15.0cm / 인장정보: 吳衡根印, 李王家圖書之章
청구기호    :
K2-713
M/F번호    :
MF35-1922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조선시대 문신으로 숙종 대 노론으로 활동한 蘭谷 金時傑(1653~1701)의 연보이다.
서지사항
表紙書名은 ‘蘭谷年譜’, 版心題와 書根題는 ‘蘭谷先生年譜’이다. 표지는 연한 쪽빛으로 卍字紋이다. 同書 2部로 甲本와 乙本의 제1면 우측 상단에는 ‘李王家圖書之章’이, 乙本의 우측 하단에는 ‘吳衡根印’이 날인되어 있다. 冊絲의 색상도 차이가 있는데, 갑본은 청색, 을본은 흰색이다.
체제 및 내용
난곡 김시걸은 병자호란 때 강화도에서 순절한 것으로 유명한 金尙容(1561~1637)의 4대손으로 주로 숙종 연간에 활동했던 문신이다. 남인이 정권을 장악한 1689년(숙종 15) 己巳換局으로 파직되고 노론이 집권한 1694년(숙종 20) 甲戌換局으로 다시 기용되는 등 노론의 정치적 부침에 따라 정계 활동을 한 인물이다. 연보의 구성을 살펴보면, 먼저 世系가 수록되어 있는데 『退溪集』에 수록된 「三功臣廟記」와 金昌協의 「太師壇記」에도 기록된 시조 宣平의 기사부터 연보 간행을 주도한 啓鎭의 자식 대까지 27세의 명단이 수록되어 있다. 다음은 年譜가 수록되어 있는데, 1653년(효종 4) 全州 新村 외가에서 출생한 기사부터 1876년(고종 13) 1월 연보가 완성되었다는 기사까지 수록되었다. 그다음은 대제학 金鎭圭(1658~1716)가 찬술한 墓誌銘, 우의정 李宜顯(1669~1745)이 지은 墓碣銘이 수록되어 있고, 권말에는 1876년(고종 13) 봄 6대손으로 『琬琰通考』의 저자이기도 한 金世均(1812~1879)의 발문이 수록되었다.
발문과 1707년에 건립된 「希顯堂事蹟碑」에 의하면, 1699년(숙종 25) 김시걸전라도 관찰사가 되어 옛 司馬齋 터에 학당인 希顯堂(현 전주 신흥고등학교 내)을 건립하여 선비들이 공부할 공간과 경비를 충당하기 위한 전답도 마련하였다. 그 뒤 166년이 지나 후손 金啓鎭全州判官이 되어 希顯堂의 활자로 『난곡선생연보』를 간행하였다. 『八道總錄』에 따르면 김계진이 蔭官으로 1874년 5월에 전주판관에 부임하였으므로 부임하면서 바로 연보 간행을 추진한 것으로 보인다.
특성 및 가치
김시걸의 생애를 기록한 기초 자료이며, 특히 전주희현당에 소장되어 있던 활자, 일명 整理字體鐵活字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로서 민간 인쇄를 촉진한 인쇄 문화사를 이해하는 데도 가치 있다.
참고문헌
八道總錄
집필자
이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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