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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김충장유사서(金忠壯遺事序)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찬자미상(撰者未詳)
작성시기    :
사년미상(寫年未詳)
형태사항    :
크기: 38.0×26.0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28.3×20.0cm / 인장정보: 摛文院, 奉謨堂印
청구기호    :
K2-712
M/F번호    :
MF35-1955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활약한 金德齡(1567~1596)에 관한 자료를 편집한 『金忠壯公遺事』의 서문이다.
서지사항
表紙書名과 書根題는 ‘金忠壯遺事序’이다. 표지 서명 아래에는 ‘全’으로 표기되어 있다. 제1면 우측 하단에는 희미하게 ‘摛文院’이 날인되어 있다. 본문은 주색 필사 인찰공책지에 淨書하였다.
체제 및 내용
金忠壯公遺事』에서 서문만 필사한 자료이다. 장서각 소장의 『金忠壯公遺事』(K2-711)에 수록된 서문은 1796년(정조 20)에 간행될 때 서형수광주목사로서 정조의 명을 받아 쓴 것이다. 본 서문은 누가 쓴 것인지 확인할 수 없다. 다만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된 奎1342과 奎1343에는 鄭東浚(1753~1795)의 글씨라고 되어 있어서 비교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장서각 소장 『金忠壯公遺事』(B9I 253)의 凡例 및 年譜續錄에 따르면, 1843년(헌종 9)에 續篇을 추가로 간행하였고, 그 뒤 1927년 후손 金晩植金熙文 등이 역사서나 여러 학자들의 글에 수록된 관련 글을 추가하여 後續篇을 편집하여 간행하였다.
김덕령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의병을 일으켰으며 1594년 郭再祐와 함께 權慄의 막하에서 영남 방어 전투에 참여하였다. 거제도고성 등지에서 전공을 세웠으나 1596년 7월 李夢鶴의 반란에 내통했다는 충청도관찰사 총사관 辛景行의 무고를 받아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그 뒤 1661년(현종 2)에 신원되어 관작이 복구되었고, 1668년 병조참의에, 1681년(숙종 7)병조판서로 추증되고, 1710년에 奉祀孫인 守信도 녹용되었다. 1788년(정조 12)에는 의정부 좌참찬에 추증되어 不祧特命을 받았다. 서문에서도 이미 간행본이 유통된다는 언급이 있는데, 그의 억울한 죽음이 신원되고 추증 및 후손의 녹용 등의 정치적 복권이 진행되면서 그의 행적을 정리하는 작업도 함께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특성 및 가치
金忠壯公遺事』의 여러 이본을 연구하는 데 참고할 수 있으며, 조선 후기 임진왜란에 전공을 세운 인물들의 복권과 현창 사업의 성격을 이해하는 데도 도움이 된다.
집필자
이동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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