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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행장(行狀)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정조(正祖)
작성시기    :
1789 / 정조 13년
형태사항    :
크기: 35.6×23.2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4.8×17.0cm / 인장정보: 奉謨堂印
청구기호    :
K2-679
M/F번호    :
MF35-1885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정조가 찬한 사도세자의 행장이다.
서지사항
表紙와 書根에 서명이 없다. 제1면 우측 상단에는 ‘奉謨堂印’이 날인되어 있다. 본문은 상하향이엽어미의 흑색 목판 인찰공책지에 淨書하였다.
체제 및 내용
정조가 부친 사도세자의 일생을 「행록」, 「궁중기문」 등을 참고하여 저술하였다. 『弘齋全書』 권18에 같은 내용이 「顯隆園行狀」으로 실려 있다.
행장』의 내용은 다음과 같다. 사도세자1735년(영조 11) 1월 21일에 태어나 1736년에 세자로 책봉되었다. 1737년에 처음으로 書筵을 열었다. 1739년에 入學禮를 거행하였고, 1743년에 冠禮를 행하였다. 1744년에 嘉禮를 행하여 홍봉한의 딸과 혼인하였다. 영조사도세자의 틈이 갈라진 것은 영조경종을 모시던 내인들로 하여금 사도세자를 기르게 한 데서 연유하였다. 두 사람 사이를 중재하던 화평옹주가 갑작스레 죽은 것도 사태를 악화시켰다. 조현명, 박문수, 이종성 등은 세자를 위해 1749년에 대리청정을 성사시켰다. 대리청정 후의 내용은 사도세자영조의 갈등, 세자를 지지하는 이종성의 귀향, 사도세자의 관대한 정사, 세자를 모함하는 소문들, 김상로 등의 세자 모해, 세자를 감싸던 정성왕후인원왕후의 승하, 1758년 영조가 내린 들을 수 없는 口奏, 세자의 『武技新式』 편찬, 1761년 세자의 평양 순찰과 홍계희의 이간질, 1762년 나경언의 투서와 세자의 죽음, 세자에게 내린 처분에 항거했던 신하들의 행적, 죽음 이후 영조의 후회, 1776년 세자 관련 『承政院日記』를 비롯해 공문서에서 1757~1762년의 기록을 삭제한 것 등이다. 마지막으로 세자 추숭 기록을 서술하였다.
특성 및 가치
사도세자에 대한 기본 자료의 하나이다. 세자가 죽은 원인을 세자 주변의 역적 때문이라고 단정하고 세자의 억울함을 강조하는 정조의 인식 또한 볼 수 있다.
집필자
이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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