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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행록(行錄)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영조(英祖)
작성시기    :
1728 / 영조 4년
형태사항    :
크기: 30.4×22.1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인장정보: 奉謨堂印
청구기호    :
K2-678
M/F번호    :
MF35-1678
기록시기    :
1728年(英祖 4) 以後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조선의 제21대 왕인 영조가 첫 아들인 孝章世子의 이른 죽음을 안타까워하며 친히 지은 행록과 誌文 등이 실린 자료이다.
서지사항
表紙書名은 ‘行錄’이다. 표지 서명의 아래에 ‘親製’라고 기재되어 있다. 표지 우측 상단에 ‘誌文 親製 哀冊文, 諡冊文’라는 편목이 필사되어 있다. 書腦 하단에 ‘共三’이라는 기록이 있다. 제1면 우측 상단에는 ‘奉謨堂印’이 날인되어 있다. 본문은 괘선이 없는 종이에 필사하였는데, 주색 圈點을 찍은 부분이 있다.
체제 및 내용
영조효장세자(眞宗, 1719~1728)의 평소 행실에 대해 직접 기술한 행록과 묘지문이 수록되어 있고, 효장세자의 장인인 趙文命(1680~1732)이 지은 시책문과 판중추부사 李宜顯(1669~1745)이 지은 애책문이 함께 수록되어 있다. 효장세자영조의 장자로 1719년靖嬪 李氏(?~1721)의 소생으로 창의궁에서 태어나 영조가 즉위하면서 敬義君에 봉해졌고 1725년(영조 1)에 세자로 책봉되었다. 1727년에는 조문명의 딸인 孝純 賢嬪(孝純王后, 1715~1751)과 혼인하였으나 1728년(영조 4) 10세의 어린 나이로 죽었다. 養子인 正祖(재위 1776~1800)가 즉위하면서 眞宗으로 추존되었다.
영조는 친히 지은 행록에서 효장세자가 3세 때부터 행실이 바르고 효심이 뛰어났으며, 7세 때 관례를 치르고 9세에 가례를 치를 때 주위 사람을 탄복시킬 정도로 예에 맞는 행동을 했다고 칭찬하였다. 그러나 영조는 그 성품과 기량이 뛰어난 세자가 일찍 죽어 그 능력을 펼치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면서 이 행록을 지은 서술 의도를 밝혔다. 묘지문에서도 그 모친인 정빈 이씨효장세자를 낳은 직후 사망했음에도 그가 어릴적부터 효심이 깊었으며 행실이 뛰어났지만 이른 나이에 죽어 애석함을 표현하면서 시호를 ‘孝章’으로 했다고 기술했다. 조문명 역시 시책문에서 효장세자의 뛰어난 성품과 자질을 서술하였고 이의현은 애책문에서 효장세자1728년 창경궁에서 졸하자 영조가 친히 애도하여 그 슬픔을 글로 표현했다고 서술했다.
특성 및 가치
영조가 친필로 효장세자의 평소 행실에 대해 구체적으로 기록한 행록이 포함된 자료다. 현재 장서각에 소장된 유일본이며 영인본은 간행되지 않았다.
참고문헌
英祖實錄
正祖實錄
孝章世子年譜
집필자
신병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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