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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한초(漢艸)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정조(正祖)(조선왕(朝鮮王), 1752~1800) 명찬(命撰)
작성시기    :
[1797] / 정조 21년
형태사항    :
크기: 33.5×22.4cm / 판본: 금속활자본(金屬活字本)(정유자(丁酉字))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4.7×17.1cm / 인장정보: 李王家圖書之章
청구기호    :
K2-648
M/F번호    :
MF35-1503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1797년(정조 21)에 인출한 정유자본 『사기영선』에서 권6~7에 해당하는 『한서』 2권만을 별도로 분리하여 한 권의 책으로 성책한 서적이다.
서지사항
表紙書名은 ‘漢艸’이며, 권수제는 없다. 서명은 표지 서명에 의한 것이다. 본 장서각본 도서는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 『漢草』,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漢書列傳選』과 동일본이다. 표지 이면에는 “庚申(1800)六月初十日/內賜漢艸一件/[臣行恁]”의 내사기가 묵서되어 있다. 내사기를 통해 볼 때 1800년(정조 24)윤행임에게 내려 준 내사본임을 알 수 있다. 版心題·卷次·張次는 모두 墨抹되어 있다. 가장 먼저 수록된 「蘇武傳」의 경우, 편명 아래에 있던 내용을 刀割한 후에 백지로 덧댄 것을 볼 수 있다. 권말에는 역대에 주조된 甲寅字에 관한 鑄字事實이 첨부되어 있다. 문헌 기록과 판형 및 지질을 고려해 볼 때 1797년 정월부터 2월 사이에 인출된 정유자본으로 추정된다.
체제 및 내용
본 도서는 8권으로 인출했던 정유자본 『사기영선』에서 권7~8의 『한서』 부분인 蘇武傳, 李陵傳, 匈奴傳, 霍光傳, 夏侯勝傳, 魏相丙吉傳, 蕭望之傳, 趙充國傳, 梅福傳 등 총 8편만을 따로 분리한 서적이다. 이와 동일한 인본은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 『漢草』,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소장 『漢書列傳選』이 있다. 1795년에 편찬된 『사기영선』은 『사기』 130권과 『한서』 100권에서 精髓만을 선정한 후, 1796년(정조 20)에 정유자본으로 인출한 것이다. 이 인본의 권1~6에 『사기』가, 권7~8에 『한서』가 수록되어 있다. 그러나 초인본에는 오류가 있었기 때문에 1797년 정월~2월에 초인본의 오류를 교정한 제2의 정유자본과 제3의 정유자본이 인출되었다. 본 도서는 바로 제2의 정유자본에서 『한서』 부분만을 분리하여 성책한 것이다. 이 책의 원형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에 소장된 『사기영선』(奎119 - 3)으로 추정된다. 그 이유는 『한초』의 「소무전」에서 제1면의 장차를 보면 원래 ‘九’가 인쇄되어 있었는데, 이 장차는 제2의 정유자본인 규장각한국학연구원본에서만 나타나기 때문이다. 이 밖에도 규장각한국학연구원본의 경우 권7의 제9장인 「蘇武傳」 하단에 ‘以下漢書’라는 소자가 주기되어 있지만, 『한서』만을 선정한 본 도서에서는 이 주기가 불필요했기 때문에 刀割되어 있고, 규장각한국학연구원본에 있던 판심제와 卷次 및 張次 역시 『한초』와 무관하기 때문에 모두 塗抹되었다는 점도 또 다른 근거가 된다.
특성 및 가치
사기영선』 재간본의 인출 시기를 추정하는 데 기준이 된다. 또한 정조 대에 이루어진 『사기』와 『한서』에 대한 평가는 물론 당시의 출판 문화를 살필 수 있다.
참고문헌
김소희, 「중국본 『史記』·『漢書』의 조선 유입과 編刊에 관한 연구」, 한국학중앙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박사학위논문, 2012.
집필자
김소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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