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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한원고사(翰苑故事)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예문관(藝文館) 편(編)
작성시기    :
1841 / 헌종 7년
형태사항    :
크기: 31.7×21.5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0.0×13.7cm / 인장정보: 李王家圖書之章
청구기호    :
K2-616
M/F번호    :
MF35-390
기록시기    :
1841~1849年(憲宗 7~15)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고려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史官 관청의 변천, 임명, 역대 史官을 기록한 책이다.
서지사항
表紙書名은 ‘翰苑故事’이며, 표지 서명 하단에는 冊次가 ‘單’으로 표기되어 있다. 본문은 上下向白魚尾를 띄는 黑色의 木版印札空冊紙에 필사되어 있다. 마지막 장 공책지 안쪽에 “朝鮮京城鐘路三丁目九十番地 / 各種新舊書籍大發賣 / 廣學書鋪 / 金相萬”이라는 紫色 스템프가 날인되어 있다. 장서각 소장본 중 김상만이 운영하던 서점에서 발매된 서적 중 장서각에 소장된 도서는 『萬國史記』(K2-319), 『歷代君鑑』(K2-328) 등이 있다. 이 책의 필사 시기는, 趙秉駿1841년(헌종 7) 12월 14일에 藝文館檢閱에 제수된 기록에서 본문이 끝나는 점으로 보아, 1841년 이후의 憲宗年間(1841~1849)으로 추정된다.
체제 및 내용
본 도서는 『高麗史』의 百官志에서부터 사관 제도의 변화를 일별하였다. 고려 말 사관 제도가 한림원에서 분리·통합되는 과정을 반복하다가, 예문관 참외관이 한림으로 춘추관 記事官을 겸직하게 되는 일련의 과정을 설명하였다. 이어 ‘新薦式’에서는 사관이 吏曹錢選法이 아닌 自薦으로 운영되었던 점을 밝혔다. ‘자천제’는 조선 초기 사관의 독립성을 보장하는 조치였음을 밝혔다. ‘取才’와 ‘曝曬式’은 사관의 선발 시험과 실록 포쇄의 매뉴얼이다.
이어 「翰林館閣會圈」이 1776년(정조 즉위) 10월 13일부터 기록되어, 1796년, 1799년을 거처 1841년(헌종 7)까지 기록되어 있다. 자천으로 운영되던 사관 선발이 당색에 좌우된다는 비판을 받으면서 1741년(영조 17) 3월부터 館閣 당상의 회권으로 바뀐 결과였다. 이 사실은 『翰苑故事』에 실린 黃景源(1709~1787)의 「藝文檢閱題名錄序」에도 나와 있는 바, 정조 초반 황경원 등이 자천으로 복구할 것을 주장했으나 허락되지 않았다.
「翰苑題名錄」에는 黃喜, 金問 등 역대 檢閱을 역임한 사람들의 명단이 적혀 있는데, 급제년과 최고 관직을 기록했다. 일부 급제, 관직 사실이 더러 빠진 사람도 있다.
특성 및 가치
본 도서는 역대 사관(검열) 역임자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이다. 또한 권점제 실시 이후 그 실제를 확인할 수 있는 유일한 자료이기 때문에 사료 가치가 매우 높다.
집필자
오항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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