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자입력기

자료열람

고서

장막군안(帳幕軍案)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무위소(武衛所) 편(編)
작성시기    :
1893 / 고종 30년
형태사항    :
크기: 39.5×25.0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29.1×19.8cm /
청구기호    :
K2-584
M/F번호    :
MF35-1955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1893년(고종 30)의 행차에 동원되어 왕이 임시로 머물 때 장막을 치는 등의 일을 관장하였던 帳幕軍의 명단을 기록한 것이다.
서지사항
서명은 表紙書名을 따른다. 표지 서명 우측 상단에 ‘癸巳十二月日’이라는 필사기가 묵서되어 있다. 앞표지 면지에도 표지와 같은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본문은 木版 墨印札空冊紙에 필사되어 있다. 인찰공책지의 판형은 上下向二葉花紋魚尾이며, 반복적으로 사용되는 문자인 年, 父, 係, 住, 長, 面, 髥, 力, 疤가 판각되어 있다. 卷頭에는 “次知外廳軍官嘉義前五衛將李肯鎭癸巳(1893)三月十五日劃下”라고 쓰인 황색 첨지가 부착되어 있다. 이를 볼 때 필사 시기는 장서각 소장의 『巡令軍案』(K2-550), 『標下軍案』(K2-614) 등과 같은 시기인 1893년(고종 30)으로 추정된다.
체제 및 내용
장막군안』의 작성 시기는 명기되어 있지 않으나 표지에 계사년 12월이라고 기재되어 있으므로 수록된 인물의 이름을 승정원일기에서 확인하여 1893년의 기록임을 추정하였다. 첫머리에는 1893년 3월 15일에 가의대부 전오위장 李肯鎭이 장막군 次知內廳軍官으로 획하된 사실이 기재되어 있고, 이어서 書字的과 牌頭, 1번 대장 1인과 장막군 9인, 2번과 3번 대장 각 1인과 장막군 8인씩 도합 30명의 명단이 정리되어 있다.
명단은 신분과 성명, 처음 募入하였을 때의 나이와 출생 연도, 아버지의 이름과 족친의 성명, 세거지, 거주지, 신장, 낯빛과 수염 여부, 근력, 흉터 여부, 모입한 연월 혹은 원 소속 등의 순서로 기재되어 있다. 신장이나 얼굴빛, 근력에 대해서는 일괄적으로 “長四尺 面鐵 髥無 力白斤 疤無”라고 용지에 인쇄되어 있다. 특징의 차이가 크게 중요하지 않거나 최소한의 기준을 통과한 경우에만 선발되었기 때문이라고 추정된다. 군사들은 모두 서울에 거주하였으며, 처음 모입하였을 때의 나이는 16~22세라 기재되어 있다.
같은 연도에 작성된 『爛後軍案』(K2-512)이나 『塘報手案』(K2-516)과 비교해 볼 때 난후군이나 당보수들이 모입된 시기는 모두 1893년 8월인데 비해 장막군은 모입하거나 다른 병영에서 옮겨 온 시기가 대부분 1892년 8월이며 1893년 8월에 모입한 군사들은 3인에 지나지 않는다는 차이를 보인다.
특성 및 가치
19세기 말 행행에 동원된 장막군의 규모와 구성을 알 수 있는 자료다.
집필자
강석화

PDF서비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