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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왕손교부선생안(王孫敎傅先生案)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시강원(侍講院) 편(編)
작성시기    :
1764 / 영조 40년
형태사항    :
크기: 44.0×30.3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36.0×25.5cm / 인장정보: 奉謨堂印
청구기호    :
K2-568
M/F번호    :
MF35-667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조선 후기 영조 대 후반에 왕손의 교육을 담당하던 스승인 敎傅의 명단을 기록한 책이다.
서지사항
靑綠色의 비단으로 장황되어 있다. 題籤은 四周가 朱色으로 돌려진 비단 위에 ‘王孫敎傅先生案’이라고 필사되어 있다. 본문은 壯紙의 朱紅印札空冊紙에 필사되어 있다. 1757년(영조 33)王孫敎傅에 제수된 洪啓能(?~1776)의 경우에는 권수에 기재되었다가 붓으로 지워져 있다. 필사 시기는 권말에 기재된 韓用和(1732~1799)의 기록을 볼 때 1764년(영조 40) 무렵으로 추정된다.
체제 및 내용
조선시대 국왕 자손의 교육에 있어서 세자는 생애 주기에 맞추어 輔養廳講學廳, 세자시강원에서 담당하였고, 원손의 경우에는 元孫輔養官이라는 관원을 배치해 교육을 담당하였다. 다만, 원손을 제외한 왕손의 교육 체계는 제대로 정비되지 않았다. 이에 1756년(영조 32) 10월 왕손 교육을 위한 「王孫敎傅節目儀註」를 제정하여, 왕손의 스승은 ‘왕손교부’로 명명하고 모든 절차는 왕자사부의 예에 준하도록 규정하였다.
영조의 손자는 사도세자혜경궁 홍씨 사이에서 태어난 懿昭世孫을 비롯해 후일에 국왕의 자리에 오른 正祖, 그리고 사도세자순빈 임씨 사이에서 태어난 恩彦君恩信君, 사도세자경빈 박씨 사이에서 태어난 恩全君 등이 있었다. 이 절목은 바로 이들의 교육을 목적으로 제정된 것이다. 본 도서는 절목 제정 이후 처음으로 왕손교부에 임명된 홍계능을 비롯해 尹象厚(1727~?)·李昌顯·尹得觀(1710~?)·洪樂仁(1729~1777)·金履安(1722~1791)·申光復(1721~?)·金載久(1726~?)·한용화 등 모두 9명이 기록되었다. 이 가운데 이창현은 두 번 기록되었으나, 1763년(영조 39)에 제수되었을 때는 출사하지 않았다. 또한 홍계능은 후일 역모 사건에 연루되어서인지 墨削되었다.
기록 방식을 살펴보면, 먼저 이름을 기록하고 하단에 小字로 제수 시기와 다른 관직으로 이직된 시기를 기록하였다. 이 중 주목되는 것이 윤상후에 대해 주기된 기록이다. 윤상후1757년 1월 27일 政事에서 왕손교부로 차출된 뒤, 이어 다음 달 초6일에 첫 번째 왕손과 상견례를 행하였다. 이어 1758년에 두 번째 왕손과 상견례를 행하였으며, 1759년 9월 25일에 都目政事를 계기로 돈녕부주부로 옮겨 갔다.
특성 및 가치
본 도서는 영조 연간에 왕손의 교육을 위해 차출됐던 왕손교부의 명단으로, 당시 왕손교부를 위한 절목이 제정되면서 이것이 실제로 구현되었음을 보여주는 자료이다. 조선 후기 왕실의 강화된 자녀 교육과 관련된 자료로서 의미가 있다.
집필자
이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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