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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석실함명록(石室啣命錄)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춘추관(春秋館) 편(編)
작성시기    :
1906 / 광무 10년
형태사항    :
크기: 41.1×24.3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선장(線裝) / 수량: 1책(冊) / 판식: 반곽(半郭) 32.9×24.3cm / 인장정보: 奉謨堂印
청구기호    :
K2-548
M/F번호    :
MF35-1887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광해군 연간부터 고종 연간까지 실록의 봉안이나 曝曬 등을 담당했던 史官의 명단을 기록한 책이다.
서지사항
본문은 黑色 印札空冊紙에 필사되어 있다. 가장 마지막에 기재된 朴海昌에 대한 기록이 “秘書監郞/丙午(1906)閏四月二十七日開庫曝曬, 光武十年”이라고 되어 있는 점으로 보아 1906년(광무 10) 무렵까지 필사된 것으로 추정된다.
체제 및 내용
서명의 ‘石室’은 돌로 지은 집과 금으로 만든 상자라는 뜻의 ‘石室金匱’에서 유래한 것으로 중국 한나라 때의 藏書閣을 지칭하며, 본서의 서명에서는 史庫를 의미한다. ‘석실함명록’이란, 사고의 포쇄를 담당했던 사관들의 명단을 의미한다. 『석실함명록』은 사고를 관리하던 인근 사찰에 보관되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宋秉璿1874년(고종 11) 영남을 유람하면서 봉화태백산사고에 들렀을 때 각화사에 보관된 문적 중 『석실함명록』이 있었다고 기록한 것에서 알 수 있다. 본서는 이 중 특히 적상산사고에 보관되었던 본으로 추정되는데, 1643년(인조 21) 7월에 검열 沈世鼎적상산에 파견되었다는 기록에서 확인이 가능하다.
본서는 전반부에는 사관 명단이 기록되었고, 후반부에는 李縡가 찬술한 발문이 수록되었다. 수록 대상 시기는 광해군 때부터로, 가장 앞서 기록된 李景顔(1572~1614)은 광해군 재위 초반인 1609년(광해 1)1610년사관을 역임한 인물이다. 마지막에 기록된 인물은 秘書監郞 朴海昌으로, 재직 시기는 1906년(광무 10)이었다.
기록 방식을 살펴보면, 관직과 성명을 기록한 뒤 하단부에 해당 인물이 사고를 방문한 시기와 사유를 기록하였다. 모두 113명이 수록되었으며, 사유는 實錄曝曬를 비롯해 실록의 봉안, 실록 내용의 추출을 위한 考出, 史閣 개수, 御製의 봉안 등이다. 가장 많은 사례는 포쇄이다. 포쇄란 바람을 통하게 하여 책의 습기를 제거하고 부식 및 파손을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경국대전』에 따르면 3년에 한 번 행해지는 것이 원칙이었다. 그러나 본 도서에 나타나는 실제 모습을 보면, 3년에 한 번 행한다는 규정이 지켜지는 경우도 있으나 그렇지 않은 경우도 종종 있었다.
특성 및 가치
본서는 形止案과 함께 조선시대 사고의 운영을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참고문헌
仁祖實錄
송병선, 『淵齋集』(한국문집총간 329), 민족문화추진회, 2004.
집필자
이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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