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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서

미통청문신관안(未通淸文臣官案)

기본정보

류    :
사부
작성주체    :
편자미상(編者未詳)
작성시기    :
1765 / 영조 41년
형태사항    :
크기: 32.6×19.0cm / 판본: 필사본(筆寫本) / 장정: 첩장(帖裝) / 수량: 1첩(帖) / 판식: 반곽(半郭) 27.5×19.0cm / 인장정보: 奉謨堂印
청구기호    :
K2-537
M/F번호    :
MF35-695
기록시기    :
1765年(英祖 41) 以後
소장정보    :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

상세정보
범례
  • 인명
  • 관직명
  • 나라명
  • 건물명
  • 관청명
  • 지명
  • 연도
  • 문헌명
  • 기관

정의
조선 후기 문과에 급제하였으나 淸職에 진출하지 못한 문신 관원들의 명단을 정리한 책이다.
서지사항
두꺼운 壯紙에 필사한 인찰공책지의 행 안에 황색 첨지를 부착하여 필사하였다. 서명을 필사한 흰색 천의 題籤이 부착되어 있으며, 冊衣로 翡翠色 비단을 사용한 折帖裝이며, 앞표지에 ‘常御覽’이 기재되어 있어 어람용이었음을 알 수 있다. 서명은 표지 서명에 근거했다. 앞표지 면지에 ‘奉謨堂印’이 날인되어 있다.
체제 및 내용
본서의 제목 중 ‘未通淸’은 淸職에 후보자로 오르지 못하였음을 의미한다. 여기서 청직이란 예문관 소속의 검열·대교·봉교를 비롯해 三司인 사헌부·사간원·홍문관 소속의 관직을 의미한다. 본서는 권수제 대신 “국자 수령(國子守令)은 거쳤으나 청직에는 이르지 못함.(至國子守令而未及通淸)”이라 적고, 이어서 槐院(승문원)芸閣(교서관)으로 나누어서 명단을 수록했다. 그러나 괴원 항목에만 26명의 명단이 수록되었고, 운각은 제목만 표기되었다. ‘國子守令’은 성균관 관직과 수령 관직을 거친 경우를 말하는 것으로 보이며, 괴원이니 운각이니 하는 구분은 과거 급제 후에 이루어진 分館處를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기록 방식을 살펴보면 대상자 이름과 전·현직 관직명, 과거 급제 시기와 시험 종류, 거주지 등을 기록하였으며, 일부 인원에 대해서는 과거 급제 시기 앞부분에 관직의 변동 시기와 사유 등을 기재했다. 수록 대상 인물 중 과거 급제가 가장 빠른 인물은 1723년(경종 3) 증광시에서 급제한 任轍이고, 가장 늦은 인물은 1765년(영조 41) 식년시에서 급제한 全栢齡인 것으로 보아, 본서의 작성 시기는 영조 후반경으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수록 대상 인물에 대해 주목할 만한 것은 1747년(영조 23) 식년시에 급제한 沈國賢은 장원을, 1744년(영조 20) 식년시에 급제한 全義采는 을과의 성적을 거둔 반면 나머지 24명은 과거 성적이 丙科에 해당된다는 점이다. 혹시 이런 성적 때문에 그들이 淸望에 들지 못한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이에 비해 장원급제한 심국현의 경우는 1728년(영조 4)에 발생한 戊申亂 때 처벌된 沈維賢의 사촌동생이라는 사실이, 전의채의 경우에는 成川 지역 출신이라는 점이 작용한 것으로 판단된다. 조선 후기 과거 급제자의 관직 진출은 출신 지역과 상당히 관련이 있었다. 黃處浩洪啓沃, 심국현과 같이 서울 출신이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인원이 鎭川이나 安東, 公州, 務安, 碧潼, 성천, 定州 등 지방 출신이라는 점도 그들의 관직 진출을 제한한 원인이 되었을 것이다.
특성 및 가치
본서는 조선시대 엘리트 코스인 淸望에 들지 못한 과거 급제자의 명단만을 정리한 책이다. 이 책은 淸要職의 개편을 비롯해 당색이나 지역을 초월한 인사 정책을 구사하려던 영조의 의지를 확인할 수 있는 자료이다. 아마도 영조는 이런 미통청 문신들의 장부를 만들어 놓고 이들을 청직에 등용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짐작해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본서는 영조 대 인사 정책의 한 단면을 파악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이 시기에 과거 급제 후 관직 진출 과정에 영향을 미치는 과거 성적이나 출신지 등의 문제를 해명하는 데도 유용한 자료라 하겠다. 장서각 소장 『一不經守令國子文臣官案』(K2-581)은 본서와 유사한 성격의 도서로 상호 비교 및 종합적 검토가 필요하다.
참고문헌
一不經守令國子文臣官案』(K2-581), 장서각 소장.
집필자
이근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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